포스코그룹이 장인화 회장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리며 재계 5위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다.
장 회장은 9월 19일 윤 대통령의 체코 방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함께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올해 들어 대통령 해외 순방에 5대 그룹 수장이 총출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수들은 체코에서 원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분야에서 양국 협력 기회를 모색한다. 장 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미래 성장동력인 2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장 회장의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은 지난 6월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선임된 최정우 전 회장이 임기 내내 대통령 해외 순방 경제사절단에서 번번이 제외된 것과 대조적이다.
한동안 지속됐던 ‘포스코 패싱’ 논란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5월에는 중소기업인대회를 비롯한 대통령 주재 정부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같은 달 ‘제3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총리 등 3국 대표단을 환영하는 만찬 행사에도 주요 그룹 총수들과 함께했다. 재계에서는 그간 정부와 포스코그룹 간 불편한 관계가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6개월에 접어든 장 회장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다. 지난 8월에는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포스코센터를 방문해 글로벌 사업장 점검에 나섰다.
베이징 포스코센터에는 포스코의 중국 현지 법인인 포스코차이나를 비롯해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이앤씨의 중국 법인, 포스코경영연구원의 중국 사무소 포스리차이나 등이 있다. 9월 초에는 한·호주 경제협력위원회(KABC) 위원장 자격으로 호주 퍼스에서 열린 ‘제45차 한·호주 경제협력위원회 합동회의’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대외 행보를 보였다.
장 회장은 취임 후 100일간의 현장 경영을 통해 직원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3월 22일 포항제철소를 시작으로 포스코퓨처엠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스코기술연구원,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포스코HY클린메탈, 포스코리튬솔루션,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그룹 사업 전반을 점검하고 현장 직원들과 소통했다.
장 회장은 출범과 함께 ‘7대 미래 혁신과제’를 발표하며 혁신에도 시동을 걸었다. 철강 부문에서 매년 1조원 이상의 원가를 절감하고 임원 급여의 최대 20%를 반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실제 장 회장은 올해 상반기 5억원 미만의 보수를 받아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포스코홀딩스의 상반기 개인별 보수지급 금액을 보면 정기섭 사장이 5억9000만원, 김지용 미래기술연구원장이 5억3400만원을 수령했다. 이에 장 회장이 급여 일부를 자진 반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30년 시가총액 200조원’ 달성 목표를 위해 최근 실적이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며 사업재편의 신호탄도 쏘아 올렸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2차전지 소재 사업이 먼저 수술대에 올랐다. 포스코그룹의 배터리 소재 계열사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8월 26일 이사회 승인을 거쳐 피앤오케미칼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피앤오케미칼은 포스코퓨처엠과 OCI가 2020년 7월 각각 51%, 49%의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2차전지 음극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코팅재인 피치 생산을 준비 중이었다. 피앤오케미칼은 지난해 671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아직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포스코퓨처엠의 이번 지분 매각은 저수익 사업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인다. 포스코퓨처엠은 이번 지분 매각으로 약 1500억원의 재무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포스코그룹은 장 회장 체제 100일을 넘긴 지난 7월 구조개편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저수익 사업·비핵심 자산 120개를 처분해 2026년까지 누적 현금 2조6000억원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저수익 사업이 51개, 비핵심 자산이 69개다. 이 일환으로 올해 2분기에 서서울도시고속도로 주식 매각도 완료했다.
업계에서는 부진한 해외법인들이 다음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중국 장가항포항불수강, 인도 포스코마하라슈트라, 베트남 PY비나 등 철강 해외법인들이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다. 포스코차이나홀딩스와 칭다오스테인리스는 적자를 기록했다.
포스코그룹 사업 재편이 본격화하며 포스코퓨처엠이 최근 피엔오케미칼 지분을 전량 처분하고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추진하던 포항 니켈 제련, 전구체 공장 투자를 철회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포스코그룹 2차전지 소재 사업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준형 포스코그룹 2차전지 소재 총괄은 “캐즘 때문에 고객 주문이 줄어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라며 “2차전지 소재는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포스코그룹은 캐즘 시기를 시장 선점을 위한 내실을 다질 기회로 보고 있다.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염호와 북미·호주의 광산·자원회사 협업 등과 관련한 투자를 확정하고 차세대 기술개발을 위한 파트너사와의 협력도 시작했다. 캐즘을 기회로 염호, 광산 등 리튬 우량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장 회장은 지난 5월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에서 전기차는 꼭 가야하는 방향으로 그룹 차원에서 투자 축소는 없을 것”이라며 “특히 2차전지 소재 분야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호주계 광업회사인 블랙록마이닝과 4000만달러(약 536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전기차 연 126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흑연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그룹의 ‘2차전지 소재 풀 밸류체인 구축’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계약으로 포스코그룹은 2차전지 음극재 핵심 소재인 흑연 매장량 약 600만 톤으로 세계 2위 규모인 탄자니아 마헨게 광산을 소유한 블랙록마이닝의 지분 19.9%를 보유하게 됐다.
앞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블랙록마이닝과 개발 1단계 계약으로 2026년부터 연 3만 톤씩 25년 동안 모두 75만 톤의 흑연을 받기로 했고 이번 계약으로 추가로 25년 동안 연 최대 3만 톤의 흑연을 확보했다.
포스코그룹은 다변화된 공급망을 통해 조달한 흑연으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CRMA)에 대응하고 국내 친환경차 공급망의 글로벌 경쟁력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 회장은 “앞으로도 철강 및 2차전지 소재 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사업을 지속 발굴할 것”이라며 “국가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그룹의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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