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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제품 스케치를 그리고 원단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디자인하기 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원단을 선택해야 합니다(이탈리아 속옷 제조업체 야마메이의 비바라 시미노 사회적 책임·혁신 책임자)"
유럽연합(EU)의 과도한 '환경 관료주의'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친환경이라는 명목 하에 생겨난 수십가지 규제가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면서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EU 내 2400만개 중소기업이 '그린딜'에 따른 규제 증가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린딜은 EU가 2019년 친환경 기술 육성·경제 안보 강화를 위해 발표한 녹색성장 정책이다.
EU 의회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70개 이상 그린딜 관련 법률을 발의했다. EU집행위원회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22년에 발표된 그린 딜 관련 법안 15개로 인한 기업의 추가 행정 비용은 23억유로(약 3조4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FT는 이러한 관료주의가 특히 섬유업계 19만7000개 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EU에서는 약 130만명이 섬유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중국에 이어 최대 규모다. 섬유 업계에는 미세 플라스틱, 재무 보고 등에 걸쳐 총 16개의 그린딜 규제가 적용된다. 대기업은 공급망에 걸쳐 물 사용, 에너지소비, 노동 조건, 폐기물, 화학물질 사용 및 배출 데이터를 제출해야한다.
야마메이가 새로운 EU 규정을 준수하기 위한 데이터를 내부 분석한 결과 필요한 데이터는1000개가 넘고 그 중 40%만 기존 시스템에 구축돼있었다. 이에 관련 부서 인력을 3명에서 6명으로 늘리고 기업 지속가능성 전담팀을 꾸렸다. 바바라치미노 야마메이 공동창업자는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새로운 규정을 파악하는 데 하루에 최소 1~2시간은 투자해야한다"고 토로했다.
야마메이, 룰루레몬, 캘빈클라인 등에 원단을 공급하는 유로저지의 안드레아 크리스피 전무이사는 밀라노 외곽에 위치한 자사 공장의 지속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해 1억유로(약1500억원)를 투자했다. 크리스피 이사는 "지속가능성 의제는 5~7%의 추가 비용을 의미한다"라며 "현재로서는 결코 시장에서 경쟁이 불가능한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컨설팅회사 SB+CO는 대기업들이 이러한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비싼 자문료를 내기보다는 벌금을 감수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섬유산업의 89%에 달하는 중소기업은 컨설턴트를 고용할 여력조차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 이익단체인 SME유나이티드는 "기업가는 지방 당국의 행정 요청을 처리하는데 9~16시간을 소비하게 된다"라며 "이는 그들의 일정에서 상당한 생산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U 각국 수장들도 관료주의의 비효율성을 절감하고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알렉산더 드 크루 벨기에 총리는 "보고를 위한 보고는 기업가 정신을 억압하고 혁신을 저해한다"라며 "이는 분명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올해 말부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우르졸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7월 공약 문건을 통해 "유럽에서 비즈니스가 더 쉽고 빨라져야한다"라며 "관료주의와 보고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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