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공기업은 밸류업 안 할 건가

입력 2024-09-12 17:49   수정 2024-09-13 00:37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올해 상장 공기업의 경영평가를 내년 초 실시할 때 주주가치를 제고한 업체에 유리하도록 평가 기준을 바꾼다고 통보했다. ‘비계량 재무성과 관리 항목’에 배당 수준의 적정성, 소액주주 보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모범기준 준수 노력 등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항목 전체 배점 4점 중 2점 정도를 부여했다고 한다. 0.1점으로 경영평가 등급이 변하는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큰 배점이라고 공기업들은 설명한다.

국내 증시에는 7개 공기업이 상장돼 있다. 이들 중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은 주가가 자산가치의 20~30%에 머물 정도로 극심한 저평가 상태다. 정부가 연초부터 강하게 추진하는 ‘증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가장 필요한 기업들이다. 정부가 이런 공기업을 대상으로 주주가치 제고 항목을 추가한 것은 분명 반길 일이지만 실제 밸류업이 될 것으로 믿는 투자자도, 공기업 직원도 별로 없다. 한때 대표적 고배당주로 높은 주가를 구가한 이들 공기업이 적정 배당을 하지 못하는 것도,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를 위한 경영을 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최대주주인 정부 탓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탈원전 정책과 물가 안정 명목의 전기·가스요금 억제로 이들 공기업의 실적과 재무구조는 상장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졌다. 현 정부에선 일부 요금을 인상했지만 원가 미만 수준이 이어지면서 한전은 최근 3년간 43조원의 적자를 냈다. 올 6월 말 193조원의 부채가 쌓여 하루 이자만 121억원을 내고 있다. 가스공사는 연료비만큼 요금을 인상하지 못해 생긴 사실상의 손실 누계액인 ‘미수금’이 15조원을 넘는다. 상황이 이러니 한전은 2020년, 가스공사는 2021년 이후 배당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탓에 2016년 5월 6만3000원이던 한전 주가는 현재 2만2000원으로 8년 새 3분의 1토막이 났다. 한전은 1994년 시가총액 20조2000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 1위였지만 현재 14조원으로 30년간 30% 쪼그라들었다. 가스공사도 2008년 8만5000원까지 올라간 주가가 현재 4만4000원으로 15년여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났다.

기재부가 적자투성이 기업에 밸류업 경영평가 항목을 넣은 것 자체가 공기업의 저평가를 유발하는 배경이라는 지적도 많다. 경영평가의 근거법인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은 우리나라 327개 공공기관을 조직 규모와 업무 성격과 관계없이 획일적인 틀에 가둬 규제한다. 방만 경영을 없앴다는 명분도 있지만 2007년 제정 이후 17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 목표가 수시로 바뀌고 경영평가 기준도 누더기가 됐다. 이 때문에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관되고 장기적인 경영을 하기 힘들다는 게 공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정부는 지분만 소유하고 경영은 철저히 시장원리에 맡기는 싱가포르 공기업 지주회사 테마섹의 금융계열사인 DBS 주가가 2005년 이후 3배 오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장 공기업 밸류업은 단순히 경영평가 항목을 넣고 뺀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물가와 국제 유가가 안정화된 만큼 먼저 에너지 요금부터 원가 이상으로 올리고 설비투자 등을 안정적으로 지속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압력을 받지 않고 유가 변동 등에 연동해 안정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요금 구조를 마련해줘야 한다. 공운법도 대폭 개정해 적어도 상장 공기업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대한 자율 경영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이들을 상장폐지하는 게 소액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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