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국내 부동산 시장과 상관없는 지표로 느껴지지만, 긴 흐름으로 봤을 때 부동산의 약세 혹은 강세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는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율이 너무 올라 내수 경기가 악화하면 부동산 수요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선에서 유지되는 고환율 장세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내 집값도 중장기적으로 조정 압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배 이사의 진단이다.
배 이사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수도권 집값이 침체를 보였고,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대세 상승기였다”며 “2014년까진 일본 중국 등과 주요 선진국 대비 원화 가치가 많이 떨어졌고, 이후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방어를 잘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환율과 국내 부동산 시장이 이처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 이사는 “환율이 올라 원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만큼 내수는 안 좋아진다”며 “내수 경기가 좋은지, 나쁜지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예컨대 2014년부터 코로나19 시기까지는 환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민간 소비 여건이 좋았던 만큼, 금리 인하에 따른 아파트값 상승 동력이 더 컸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앞으로 환율은 어떤 흐름을 보일까. 배 이사는 “2010년대엔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를 유지했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1300원대로 확 올라버린 여파로 소매판매액지수 등 국내 내수 지표가 9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도 구조적 약세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준금리가 각 나라의 경제 체력을 대변한다”며 “한미 금리 격차가 좁혀져야 환율이 내려갈 텐데, 최근 추이를 보면 1300원대에 머물거나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단기적으로 집값 흐름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환율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제한적 상승에 그칠 것이란 게 배 이사의 진단이다. 그는 부동산은 단기간에 사고파는 게 아니라 가계가 평균 10년 이상 보유하는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긴 호흡에서 환율시장을 잘 살펴봐야 부동산 강세장과 약세장을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금융권이 대출 문턱을 일제히 높이면서 부동산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배 이사는 대출 여건도 거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이사는 “한국은 가계부채 총량을 GDP 성장률과 연계해 관리하고 있는데,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당연히 가계부채 증가세를 낮춰야 하는 압력이 커진다”며 “경제성장이 둔화하면 금융 문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고, 갈수록 가계대출이 확대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제시했다. 배 이사는 “과거엔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1.5~2%포인트 높았다”며 “2022년에 기준금리가 너무 빠르게 오르다 보니 (정부가) 부동산 경착륙 방지 차원에서 대출금리 부담을 낮춰, 현재의 대출금리는 과거 기준금리가 연 2.5%일 때의 수준”이라고 했다. 이미 기준금리 대비 시중 대출금리가 낮은 수준에 형성돼 있다는 얘기다.
배 이사는 무엇보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이사는 “스트레스 DSR은 만약 대출금리가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대출 한도는 늘어나기 어렵게 설계됐다”며 ‘레버리지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봤다. 빚을 충분히 내는 게 쉽지 않아지면 유효수요도 줄어 부동산 시장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부동산 시장에선 앞으로 신축 공급 부족 지표를 바탕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점치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배 이사는 내수경기와 대출 여력 등 수요를 뒷받침하는 지표가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경기가 좋아서 수요가 뒷받침될 때 공급 부족 이슈가 부각되는 것”이라며 “과거 유동성이 풍부해 수요가 증가할 땐 공급이 늘어도 집값은 올랐다”고 말했다.
배 이사는 오는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집코노미 콘서트 2024’에서 ‘부채와 환율이 좌우할 부동산 시장 전망’을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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