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돈 주고 뭐하러 쓰나"…발칵 뒤집힌 IT업계

입력 2024-09-16 21:02   수정 2024-09-16 21:03


대용량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인공지능(AI) 서비스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세일즈포스나 워크데이와 같은 소프트웨어서비스(SaaS) 산업이 위축될지를 두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판 토론이 벌어졌다.

포문을 연 것은 스웨덴계 전자상거래용 금융 결제업체 클라나(Klarna)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세바스천 시미아코스키(Sebastian Siemiatkowski·사진)였다. 시킹알파에 따르면 시미아코스키 CEO는 투자자와의 콘퍼런스 콜에서 “더 이상 (마케팅 데이터 플랫폼인) 세일즈포스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세일즈포스나 (인재관리 플랫폼) 워크데이와 같은 많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을 (내부 시스템에서) 지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일즈포스와 워크데이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비용이 비싼 편이지만 기업 운영 효율성을 향상시켜 준다. 대기업일수록, 글로벌 기업일수록 이런 서비스를 활용하는 비중이 높다. 시미아코스키 CEO는 이 발언이 전해져 찬반 격론이 붙자 13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워크데이나 세일즈포스와 같은 SaaS 플랫폼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복잡한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 것"이라며 "LLM을 도구로 사용해 이런 플랫폼의 일부 속성을 강화하거나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클라나는 오픈AI의 최초 고객사 중 한 곳이다. 두 회사는 챗GPT 개발과정에서 긴밀히 협업했다. 클라나는 최근 오픈AI와 협력해 개발한 자체 AI 어시스턴트가 1개월만에 700명의 고객을 상대로 230만번의 상호작용을 훌륭히 해냈다고 발표했다. 시미아코스키 CEO가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배경이다. 그는 오픈AI에 투자한 스웨덴 벤처캐피털(VC) 플랫캐피털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클라나가 AI로 자체 서비스를 만들어 쓸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개발된 기술을 적정 가격에 사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HR기술 애널리스트인 조시 버신은 정보기술(IT) 매체 아이엔씨(Inc.)에 “워크데이 같은 시스템은 수십년 간 축적된 복잡한 데이터 구조와 업무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며 급여 체계, 근무시간 체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클라나가 스스로 이 업무를 하는 엔지니어링 팀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시스템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사용자 경험(UI)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체 개발한 솔루션을 고객에게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회사 업무가 산만해지기만 할 것”이라고 뷰코캐피털 관계자는 X에 적었다.

클라나가 최근 대규모 적자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용 소프트웨어 이용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니세프 벤처스 대표 라제시 어낸던은 링크트인에 "클라나의 행보는 SaaS 기업들의 '아래로의 경쟁'의 시작일 수 있다"면서도 기업공개(IPO)를 앞둔 클라나의 상황이 관련돼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논란의 중심에 서서 ‘공짜 마케팅’ 효과를 보려 한다는 시각이다.

2005년에 설립돼 현재 각국에서 약 1억5000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이 회사는 2022년 10억달러, 지난해 2억41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클라나는 지난해 1200명 이상을 해고했고 추가 감원도 준비 중이다.

라스베이거스=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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