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를 적극 응원하지만…[하영춘 칼럼]

입력 2024-09-25 10:59   수정 2024-09-25 11:00




지인 한 분은 지난 2월 국민의힘 자문에 응했다고 한다. 22대 총선(4월 10일)을 앞두고 정책공약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시한 뒤 넌지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후 기준금리 인하 논란이 없었던 걸로 봐서 단순히 아이디어 수집 차원에 그쳤을 것이란게 그의 추측이다.

만일 이창용 한은 총재에게 당시 기준금리 인하 요청이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으로 본다. 한은 총재에 걸맞은 소신과 강단을 갖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강단은 지난 8월 여실히 나타났다. 금융통화위원회가 8월 22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내수진작 측면에서 아쉽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구조적인 제약을 무시한 채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Fed가 빅컷(big cut·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19일에는 “우리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이 많이 줄게 돼 국내 요인에 가중치를 둘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도 금리인하에 대해선 딱 부러진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떤 정부나 금리정책에 개입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 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Fed 의장이 금리인상을 결정하자 해고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최근엔 11월 미국 대선 전에 기준금리를 인하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인하 결정 후에 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우리는 어떤 정치인, 어떤 정치적 인물, 어떤 대의, 어떤 이슈도 섬기지 않는다”며 “오직 모든 미국인을 대신해 최대 고용과 물가안정을 추구할 뿐”이라고 답했다. 통찰력과 뚝심을 바탕으로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역대 Fed 의장들처럼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한은은 최근 파격적인 정책을 잇따라 제안하고 있다. 지난 3월엔 돌봄업종에 대해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6월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보다 농산물 물가가 유독 높다며 수입 확대를 주장했다. 지난 8월에는 아이의 잠재력보다 부모 경제력이나 거주 지역이 서울대 진학을 좌우한다며 상위권 대학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로 선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통화정책이나 잘하지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반응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움직임을 적극 지지한다. 이 총재의 말대로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한은의 기본적인 책무는 통화정책을 통한 경제에 대한 기여다. 아무리 그럴듯한 보고서를 내더라도 통화정책을 실기하면 그 부담은 경제주체들이 온전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말 한마디로 금융시장을 평정하고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면서 18년 동안 Fed 의장을 지냈다. 2006년 Fed 의장에서 내려왔지만 서브프라임모기지(저신용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진 2008년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나는 실수했다(I made a mistake)”고 사과해야 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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