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잘되는 술집, 식당을 들이겠다며 계속 임대료를 올려달라는데 이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19일 서울 문래동의 금속 가공 전문업체인 대룡정공사 작업장. 손에 쇳가루를 묻혀가며 부품을 깎던 정원석 대표는 “40여 년간 자리를 지켜왔지만 주변 철공소가 임차료 압박을 이기지 못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 대표의 사업장이 있는 문래동2가는 이 일대 철공단지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으로 꼽힌다. 이 골목(도림로 131길)에만 과거 7~8개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룡정공만이 홀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 역군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열악한 환경 탓에 소중한 기술을 전수할 인력은 유입되지 않고 인근 아파트 주민에게 ‘혐오시설’ 취급만 받는다. 견디다 못한 고령의 철공소 사장들이 이주 및 폐업을 선택했고 그 빈자리를 ‘핫플’(핫플레이스)이 채웠다. 최근 4~5년간 이곳에서 개업한 카페, 술집 등이 260곳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곳은 여전히 국내 제조업의 뿌리 역할을 맡고 있다. 금속 가공에 필요한 금형, 선반, 절삭, 보링, 열처리, 그라인딩, 후처리, 용접, 도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한곳에서 이뤄진다.
이런 생태계가 지난 수년간 지속돼온 젠트리피케이션 탓에 흔들리고 있다. 관련 공장이 빠져나가 작업 효율이 떨어지면서 발주처에 납기일을 미뤄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장인이 늘고 있다. 한 철공소 대표는 “길 건너 있던 도금 공장이 사라져 서너 시간 안에 끝낼 후작업이 이제 하루 이상 걸린다”고 토로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부영 부영메탈 대표는 “문래동 철공단지가 사라지면 나중에는 간단한 기계부품 하나 깎으려고 해도 중국을 가야 하는 등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장뿐 아니라 연구개발(R&D) 단지, 업무지원시설, 근로자 숙소 및 편의시설 등도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이에 따른 이전 비용은 총 2000억~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전에 따른 경제 효과도 기대된다. 직접 고용 일자리만 약 3600개 창출되고, 뿌리기업 1000여 곳이 신규 유입되는 등 연간 생산액 증대 효과만 1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관심을 두는 곳이 적지 않다”며 “경쟁 입찰을 통한 후보지 선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