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농산물 수입에 대한 검역을 강화해야 하느냐를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수입 농산물 검역을 통해 국내 농업을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병해충이나 질병들이 국내 농업과 생태계에 미칠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검역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반면 과도한 검역 강화가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국제적인 무역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고, 이는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주요 수입국과의 무역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수출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국제사회가 검역을 각국이 취할 수 있는 합법적 수입 규제 장치로 인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운영하며, 전 세계적으로 검역을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WTO에 따르면 2016년 1392개이던 국제 위생·검역 조치는 2023년 2088개로 늘어났다.
국민 건강은 물론 국내 농업 보호 측면에서도 검역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수입 농산물이 국내 농산물보다 저렴할 경우 소비자는 수입 농산물을 선호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국내 농업인들이 생산한 제품은 가격경쟁에서 밀려난다.
이상기후 등의 여파로 국내 농산물 수급 불안이 지속되고 세계 각지에서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는 상황인 만큼 검역 강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검역을 통해 수입 농산물의 진입장벽을 높임으로써 국내 농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검역 장벽을 통해 수입을 막으면 결국 국내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지난 설 명절 때 불거진 ‘금(金)사과 논란’처럼 국내 과일 가격이 급등하는데도 수입을 못 하니 소비자가 사과 소비를 줄이거나 품질 낮은 사과를 찾아야 한다. 이렇듯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 선택권마저 위협한다. 게다가 농산물 가격은 가정 내 소비지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수입 제한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은 전체적인 생활 물가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검역을 강화하면 농산물 수출국들이 이를 비관세장벽으로 간주하고, 한국의 수출품에 대해 보복성 무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3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의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정부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을 회원국으로 둔 세계 5대 경제블록 메르코수르와 2021년 9월까지 총 일곱 차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공식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결렬된 이유도 검역 문제였다. 한국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이런 협정에 따라 농산물 수입 제한은 무역협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에서 법적 문제로 이어진다.
검역 강화로 수입 농산물이 줄어들면 일시적으로 국내 농산물 생산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적인 가격 및 품질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