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무한루프'에 빠진 자영업 지원대책

입력 2024-09-20 17:52   수정 2024-09-21 00:31

외식업계 대부로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수년 전 골목식당 자영업자를 살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조리부터 위생, 서비스까지 백 대표가 제시한 ‘종합 솔루션’에 많은 시청자가 환호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낸 이른바 ‘빌런’(악당을 뜻하는 신조어) 자영업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을 향해 백 대표는 항상 이렇게 소리쳤다. “장사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어요!” 백 대표는 201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똑같은 얘기를 했다. 그는 “외식업 창업이 쉬워 준비성 없이 뛰어드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창업을 쉽게 할 수 없도록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6년 전 백 대표의 발언을 소환한 이유는 외식업 등 국내 자영업의 현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영업자 수가 너무 많다. 자영업자는 지난 8월 기준 568만9000명이다. 10년 전인 2014년(572만 명)에 비해 거의 줄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551만 명까지 감소했지만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이와 별도로 직장에 취직하는 대신 가족·친척 가게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종사자도 91만2000명에 달한다. 이를 합치면 전체 취업자(2880만1000명)의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영업 종사비율이 가장 높다.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이 79.4%에 달했다. 지난해 115만 곳이 창업하는 동안 91만 곳이 폐업했다. 2022년(66.2%)보다 13.2%포인트 급증했을 뿐 아니라 2013년(86.9%) 후 가장 높다.

정부도 마냥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대책으로 △경영 부담 완화 △성장 촉진 △재기 지원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전기료, 임차료뿐 아니라 배달·택배비까지 지원하고, 채무 감면 등 금융 지원을 대폭 확대해 자영업자 경영을 도와주겠다는 계획이다. 폐업 시 채무 부담을 덜어주고 취업 및 재창업 프로그램도 적극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5조9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

관건은 실효성이다. 금융 지원, 경영환경 개선, 재창업 지원 등은 역대 정부가 매년 단골 메뉴처럼 내놓은 대책이었다. 예산 규모만 커졌을 뿐 대책은 별반 차이가 없다. 현장 반응도 냉랭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엔 정부 대책이 ‘좀비 자영업자’를 양산하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만 야기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에 정작 당사자들이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다.

정부 대책의 이면엔 자영업자를 국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본래 자영업은 자립의 상징이다. 필연적으로 경쟁시장이다. 내수가 회복된다고 해도 살아남는 자영업자는 ‘장사할 준비가 된’ 극소수다. 그런데도 퇴직금만 갖고 뛰어든 50대 은퇴자와 준비 안 된 청년 사장이 부지기수다. 지나치게 낮은 창업 진입장벽과 ‘창업→폐업→재창업’ 등 회전문 창업이 자영업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을 주저했다. 매년 100만 명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문턱을 강화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역대 어느 정부도 섣불리 내놓지 못했다. 대신 자영업자를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간주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손쉬운 정책만 내놨다. 이 결과 자영업 위기가 계속되고, 투입 예산은 불어나는 ‘무한루프’를 반복하는 정책 실패를 초래했다.

자영업 문턱 강화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사리 건들 수 없는 문제다. 해법은 정치권, 특히 국회 과반 의석을 보유한 야당이 쥐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팬데믹 시절인 2021년 ‘음식점 총량제’ 도입을 언급했다. 물론 음식점 총량제는 너무 나갔다.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와 충돌할 뿐 아니라 자유시장경제 원칙에도 어긋난다. 하지만 신규 창업자를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몇 개월간 의무 시행하거나 자격증 취득 등 신청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은 적극 검토할 만하지 않을까. 금기시돼온 자영업 문턱 강화에 대해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아야 할 때다. 기존 방식을 되풀이하는 한 자영업 위기의 무한루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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