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오는 10월 스물아홉 번째 막을 올린다. 30여 년 전 ‘문화 불모지’로 취급받던 부산이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시발점이 된 권위 있는 축제지만 지난해 성추문과 인사 잡음 등 난맥상이 드러나며 신음했다. ‘아홉수’의 BIFF는 강력한 쇄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화제 포문을 여는 영화 ‘전, 란’이 변화의 시작이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고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종상 미술상을 받은 김상만 감독이 연출한 사극으로, 넷플릭스에 공개될 작품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를 개막작으로 고른 결정이 흥미롭다. 해외 유수 영화제들이 OTT 작품 초청 비중을 높이고 있긴 해도 극장에 걸리지 않는 작품을 개막작으로 낙점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BIFF는 대중성을 전면에 내세운 결과라고 설명한다. 박도신 BIFF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관객이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며 “‘전, 란’은 역대 개막작 중에서도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관객 친화적 영화제라는 정체성은 다른 초청작에서도 드러난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의 다큐멘터리인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가 오픈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야외 극장에서 상영되는 게 대표적이다.
BIFF는 관객이 직접 우수한 아시아 지역 다큐멘터리 영화를 투표로 뽑는 ‘다큐멘터리 관객상’도 신설했다. 김영덕 BIFF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위원장은 “대중의 관심과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BIFF가 대중성에 방점을 찍은 것은 지난해 성 비위, 인사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으며 멀어진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다. 국고보조금 삭감 등 예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기업 협찬과 기부금 유치 등을 통해 초청작을 늘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광수 BIFF 이사장은 “지난해 내홍을 겪으며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BIFF는 최근 영화계 화두인 인공지능(AI)도 다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시아 영화제 중 처음으로 AI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는 부스를 열고, AI 기술과 영화의 융합을 논의하는 콘퍼런스도 한다. 박 이사장은 “AI와 영화산업을 접목할 수 있는 지점을 짚어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세상을 뜬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는 특별 프로그램 ‘고운 사람, 이선균’도 열린다.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파주’(2009)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등 대표 출연작 6편을 상영하고 스페셜 토크를 진행한다.
유승목 기자
올해 부산에서 꼭 챙겨 봐야 할 영화, BIFF 관전 포인트 등 더 자세한 소식은 오는 30일 발간되는 ‘아르떼’ 매거진 5호(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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