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정년연장이든 계속고용이든

입력 2024-09-22 17:27   수정 2024-09-23 00:11

2013년 4월 마지막 날, 국회는 정년 60세를 법제화하는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면 시행 시기는 2017년 1월, 법 개정부터 전면 시행까지 준비 기간은 3년8개월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0년여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법 개정 취지대로 더 많은 근로자가 60세까지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노후를 준비했을까. 주지하는 대로 그렇지 못하다. 법이 강제하는 대로 정년을 채운 근로자들은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입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퇴직과 동시에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며 삭감된 임금을 내놓으라는 소송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정년 60세 부실 입법 부작용 여전
정년연장의 혜택을 누리고 회사와 소송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발표에 따르면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조기퇴직자는 오히려 더 늘었다. 지난해 정년퇴직자는 41만7000명으로 2013년(28만5000명)보다 46.3% 늘었는데,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등으로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 이전에 조기 퇴직한 근로자는 같은 기간 32만3000명에서 56만9000명으로 76.2% 급증했다. 법으로 정년 60세를 강제해줬지만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았음은 물론 봇물처럼 터진 임금피크제 소송이라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만 뿌린 꼴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3년 전후는 700만 명이 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가 몰렸던 시기다. 2012년은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가 함께 치러진 해다. 여야 할 것 없이 베이비붐 세대의 환심을 사야 하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놓칠 수 없는 공약이었고, 결국 새 정부 출범 두 달여 만에 뚝딱 처리했다. 졸속 입법도 모자라 정년연장은 강제하면서 그에 필수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그저 권고사항으로 둔 부실 입법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정년연장 화두가 급부상했다. 정부가 이달 초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며 현재 59세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을 64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면서다. 일은 60세까지밖에 못하는데 연금은 65세부터 받게 되니 소득 공백을 메우려면 더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이는 없다.
표 의식한 선거판 경품 돼선 안 돼
중요한 것은 ‘어떻게’다. 임금 삭감 없이 정년을 늘리자는 노동계, 임금체계 개편이 먼저라는 경영계를 향해 정부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내년 초 초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정년 65세 연장 또는 계속고용 관련 법 개정 이슈는 2027년 3월 대통령선거판의 메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든 야든 1700만 명에 이르는 40~50대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뒷일은 나 몰라라 식의 ‘나쁜 정치’의 선례는 ‘최저임금 1만원’ ‘정년 60세’ ‘주 52시간 근로’만으로도 족하다. ‘저녁 있는 삶’을 선사한답시고 정작 최저임금 근로자의 저녁 먹을 돈을 빼앗고, 정년 60세 연장과 주 52시간 근로의 혜택은 강력한 노조 우산 아래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등 노동시장 상위 10%만이 누렸다. 그렇게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욱 고착화하고 심화됐다. 정년연장이든 계속고용이든 치열한 논쟁과 양보의 결과여야지, 선거판의 경품이 돼서는 안 된다.

백승현 경제부 부장·좋은일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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