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금융소비자 보호와 가상자산

입력 2024-09-23 17:30   수정 2024-09-24 00:05

1997년 외환위기 전에는 은행이 망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설마 하던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많은 국민이 예금을 찾겠다고 앞다퉈 창구로 달려갔다. 당시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는 데 투입된 공적자금은 100조원이 넘는다. 이 중 부실 금융회사 임직원의 불법행위로 금융회사에 14조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대출을 받아 간 부실 채무기업의 임직원 횡령도 금융회사 문을 닫게 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법을 개정해 예금보험공사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유책임자들의 재산을 조사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러나 부실 관련자들이 몰래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오는 일은 쉽지 않다. 본인의 재산을 가족 명의나 외국으로 교묘히 빼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부실 관련자 재산을 캄보디아에서 찾은 적도 있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그간 검찰과의 협업으로 예보 내에 조사본부를 운영하며 부실 책임자의 은닉 재산을 100억원가량 찾아올 수 있었지만, 불법 재산을 숨기는 장소와 방법은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한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은 이동이 쉽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2024년 미국 대선 후보 양측이 친(親)가상자산 정책을 내건 만큼, 향후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가상자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익명성을 악용해 국외 자금세탁 및 불법자금 은닉 등 범죄에 활용하는 부정적인 현상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이미 세금을 체납한 체납자의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압류해 세금을 징수하고, 검찰이 자체 가상자산 법인계좌를 개설해 범죄 수익으로 숨겨둔 가상자산의 회수를 추진하는 등 정부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

예보도 최근 가상자산사업자와 제휴를 맺은 은행의 거래내역을 조사해 약 1000만원의 가상자산을 처음으로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가상자산사업자로부터 직접 자료를 받았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회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와 예보는 이와 관련한 예보법의 국회 의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예금보험기금은 선의의 예금자와 부보금융회사가 성실하게 납부한 보험료로 조성한 것으로, 건전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부실 금융회사에 대한 지원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도 가상자산을 통한 자산 은닉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앞장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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