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계좌서 20兆 증발…이미 '금투세 충격' 시작됐다

입력 2024-09-23 18:11   수정 2024-10-02 16:00


“금융투자소득세가 소수 부자 세금이라고요? 그들이 움직이는 자금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지금도 외국인 투자심리에 좌우되는 시장인데 금투세 시행으로 ‘큰손’ 개인 자금까지 빠지면 국내 증시 불안정성은 크게 높아질 겁니다.”(A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영향력 커진 큰손 자금 이탈 우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투세 도입과 관련해 혼란이 이어지자 국내 ‘슈퍼 개미’들의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3대 증권회사 개인투자자 계좌 중 국내 주식 투자로 5000만원 이상 수익을 낸 계좌의 잔액은 작년 말 46조5691억원에서 36조4365억원으로 10조원 넘게 줄었다. 이들 증권사의 점유율 합계가 약 50%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20조원이 감소한 셈이다.

같은 기간 전체 개인 계좌의 잔액은 345조6349억원에서 361조3957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해 말 이들 증권사의 전체 개인 계좌 평균 잔액이 1072만원이었는데 5000만원 초과 수익 계좌의 평균 잔액은 4억3468만원으로 40배 이상 많았다.

전체 계좌에 견줘 고수익 계좌 잔액이 줄어든 데 대해 증권사들은 금투세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수익률 20% 이상이 고스란히 날아가는 셈인 만큼 개인 큰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금투세”라며 “상반기에 시장이 좋았음에도 고수익 계좌 잔액이 줄어든 것은 금투세 시행 리스크 때문에 이익을 확정 짓고 해외로 이탈한 큰손 자금이 많은 탓”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의 금투세 대상 개인 계좌에는 상반기 기준 70조원 이상의 자금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확정 수익이 클수록 세금이 늘어나는 금투세 구조상 추가 이탈이 우려된다. 기본공제 5000만원과 과세표준을 고려하면 1억원의 양도차익에는 1100만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수익이 5억원이라면 세금은 1억725만원이다. 수익 10억원을 거두면 2억4475만원, 20억원은 5억1975만원으로 세금이 커진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슈퍼 개미의 자금 규모와 증시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10년 전만 해도 개인당 1000억원만 갖고 있으면 큰손이라고 했지만 조 단위를 굴리는 개인도 있는 지금은 금투세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과세 이뤄지면 시장 축소 못 돌이켜
운용업계에서는 과거 파생상품 과세 이후 시장이 오히려 축소했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013년부터 논란이 된 파생상품 과세는 진통 끝에 2016년 실행됐고, 2018년엔 세율이 양도차익의 5%에서 10%로 상향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만 해도 44조8530억원에 달하던 코스피200 선물 일일 평균 거래대금은 과세가 시행된 2016년 17조110억원으로 30조원 가까이 줄었다. 시장이 선진화됐음에도 2022년 기준으로 24조9130억원에 그치는 등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 30대 개인투자자는 “최근 몇 년간 서울 집값 폭등으로 이제 자산을 증식할 방법은 주식투자뿐”이라며 “단순한 투자자 수로 ‘소수 과세’라는 일부 정치인의 주장은 대규모 자금 수급이 중요한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2022년 442억2872만달러에서 지난해 말 680억2349만달러, 이달 21일 901억1839만달러로 처음으로 900억달러를 넘어섰다.

박한신/이시은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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