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데뷔 14년. 뮤지컬 배우로 먼저 데뷔해 아이돌부터 배우, MC와 프로듀서까지 다양한 타이틀로 불렸다. 어떤 일을 하든 "목숨 걸고 했다"면서 치열한 시간을 보낸 그였다. 최근 11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연극 '임대아파트'를 마치고 데뷔 후 처음으로 여유로운 휴식기를 갖고 있다는 그는 "엄마와 처음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며 "지금껏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차근차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조승희는 미스 춘향 선발대회 진 출신 아이돌 멤버로 알려졌지만, 실제 데뷔는 국민대 연극영화과 입학 후 발탁된 뮤지컬 '아이돌'이었다. 이후 걸그룹 파이브돌스와 다이아 멤버로 활동했다. 어느 팀에 있든 센터였고, 다이아에서는 리더였지만 연기자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전하며 팀을 나오게 된 것.
적지 않은 시간 활동했던 본명 조승희라는 이름을 두고 조이현으로 개명한 것도 보다 치열하게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는 포부에서였다. 하지만 동명이인 배우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땐 조승희, 음악을 할 땐 조이현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이후 MBC '방과후 설렘' 제작 총괄과 A&R을 담당해 83명 참가자를 직접 선발하고 연습생 트레이닝, 매니지먼트까지 전부 담당했다. '방과후설렘' 종영 이후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걸그룹 클라시의 소속사 대표가 됐고, BAE173, 판타지보이즈까지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연극 무대에 오르기 전, 올해 나온 앨범까지 모든 기획과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왔다"는 조승희는 "지난 5년 동안 프로듀서로 일할 때만큼 제가 열심히 활동했다면 대스타가 됐었을 거 같다"면서 웃었다. 아이돌로 활동할 때에도 음악부터 콘셉트까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던 조승희를 보고 그를 프로듀서로 영입한 회사에서 자회사 대표직까지 주며 많은 권한을 줬지만, "그만큼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며 "행사에 명품 브랜드 의상을 입히려 직접 협찬받고, 아울렛을 돌며 그에 어울리는 소품을 구매했다"고 했다.
그랬던 조승희가 가장 최근까지 "죽도록 열심히 했다"는 활동은 연기였다.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가 대학로의 분위기를 느껴 감회가 남달랐다"는 조승희는 공개 오디션에 원서를 제출해 그야말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연기를 해왔기에, 무대 위 연기도 비슷할 거라 착각했어요. 아이돌로도 무대에 섰으니 무섭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연극은 정해진 공간에서 저만 바라보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경이 쓰였어요. 저의 꼼지락까지 눈치챌 거 같아 손가락, 발가락까지 집중했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연기해야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임대아파트'는 2001년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일상을 담았다. 조승희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연인을 뒷바라지하는 윤정현 역을 맡았다. 프로듀서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에 연극이라는 새로운 도전장을 낸 이유에 대해 조승희는 "저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9세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했고, 10년 넘게 활동해 어느덧 서른 초반이 된 만큼 "내가 일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지 불안함이 생기던 시기였다"면서 그때를 돌아봤다. 지인의 소개로 오디션 소식을 듣고 "1100명이 넘는 지원자들 사이에서 제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실험해본 것"이라며 "정체성 혼란의 시기에 '딱'하고 마주친 하나의 이벤트 같은 사건인데, 이걸 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못하겠다' 싶어서 '죽는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끝내고 나니 어떻냐"는 말에, 조승희는 환하게 웃으며 "잘한 거 같다"고 그동안 치열한 시간을 보낸 자신을 자평했다. 조승희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많은 분이 칭찬하고 좋아해 주셨다"며 "일정상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이 작품을 보고 출연 제안도 받으니 스스로 잘 무리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첫 데뷔는 뮤지컬이었고, 가수로 무대에 설 때도 안정적인 보컬을 보여줬던 조승희였다. MBC '복면가왕'에서 결승 무대에 진출했을 정도다. 조승희는 "뮤지컬 무대에서 보고 싶다"는 사심을 드러내자, "제 목소리에 한계점이 있긴 하다"며 "제가 갑자기 옥주현 선배처럼 부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며 또다시 냉정한 자기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제가 잘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난 여기밖에 못 해'라고 벽에 가로막혀 있기보다는 스스로 변하고 경험하며 한계점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조승희의 혼란과 고민은 지금껏 그가 열심히 하고, 일단 일을 시작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왔기에 기인한 것들이다. 노래와 춤, 연기와 프로듀싱까지 다방면으로 "잘한다"는 평가를 받다 보니, 정작 하나의 영역에 집중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다음 스텝을 고민한다"는 조승희는 "뭐가 됐든 제 능력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얼마나 잘하냐' 이렇게 보면서 기준이 높기도 하고요. '네가 뭘 할 수 있냐'면서 시작도 전에 색안경을 낀 분들도 있어요. 그걸 깨부숴야 하는 작업도 제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주어졌을 때 '잘 해내자'고 생각하고 죽도록 임한 거 같아요. 그래서 일을 안 하면 불안하고, 불안한 게 싫어서 달려만 왔는데 그러다 보니 여러 능력치도 생기고 스스로 탄탄하고 좋은 사람이 돼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런 저의 행보를 앞으로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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