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찾은 스웨덴의 한 마트에서 페트병으로 된 생수를 샀다. 뚜껑을 돌리다가 본의아니게 페트병과 씨름해야 했다. 용기와 뚜껑을 잇는 5mm 가량의 접합 부분이 좀체 시원하게 떨어지지 않아서였다. 한참을 낑낑대다 포기했다.
계속 달라붙어 있는 뚜껑에 입술 한쪽이 눌린 채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서 불량품이 나왔네?’ 그런데 웬걸, 우연히 한번 접한 불량품이 아니었다. 스웨덴에 머무는 내내 페트병이든 종이팩이든 모든 음료의 뚜껑은 본체와 분리되지 않았다.
그 해답은 남부 도시 룬드에 위치한 친환경 멸균 포장재 기업 테트라팩을 방문했을 때 들을 수 있었다. 올해 7월부터 유럽연합(EU)에서 ‘뚜껑 일체형 페트병’ 의무화가 실시되면서 전면 교체 작업이 이뤄졌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거리 아무데나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수거와 재활용이 원활해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테트라팩 관계자는 “팩음료에 붙은 캡뿐만 아니라 빨대의 포장비닐도 일체형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역사 등 스웨덴 곳곳에서는 폐기물 수거 전용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레투르팍 등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판타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길게 줄지어 선 시민들의 손에는 페트병과 캔 등이 한아름씩 들려 있었다.
이들은 용기를 반납해 보증금을 돌려받고, 기업은 재활용 등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테트라팩의 경우 수거한 팩을 3~4회 재활용하고, 이후 섬유질이 변형되면 다른 방식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에도 투자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테트라팩의 멸균팩에서 나오는 폴리알(플라스틱·알루미늄 복합소재)은 가구나 건축 자재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세미나실에 비치된 조명을 가리키며 “이것도 폴리알로 만든 제품”이라고 했다.
세계는 자원순환 경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플라스틱의 생애 전주기에 관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자원순환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협력 체계다. 한국은 오는 11월 부산에서 협약의 마지막 회의를 주최한다. 한국의 폐기물 분리배출, 선별 인프라는 글로벌 회의의 대미를 장식할 만큼 체계적일까.
한국 정부는 국내 재활용률이 70%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상은 27%(그린피스 ‘2023년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에너지 회수를 열적 재활용으로 보고 재활용 범주에 포함해 데이터 착시를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선 매립되는 폐기물 비중도 12%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반면 스웨덴의 재활용률은 50%, 에너지 전환용 소각률 50%로 매립되는 폐기물이 거의 없다.
스웨덴에서 직접 경험한 뚜껑 일체형 페트병 음료는 순간의 불편함을 자원순환에 대한 인식 제고로 만들어줬다. 한국은 생산자가 재활용을 책임지는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을 2003년 도입했다.
1994년 처음 시행한 스웨덴과는 10년에 가까운 격차가 존재한다. 글로벌 회의 개최국이 된다고 해서 이 격차를 좁힐 수는 없다. 한국만의 해법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KPF 디플로마 기후변화대응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보도됐습니다.
스톡홀름·룬드=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