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자산운용 업계에 오랜 기간 몸담은 투자 전문가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2023년 1월부터 제6대 금융투자협회장을 맡고 있다.
서 회장은 지난 9월 12일 한경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밸류업은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제도적으로도 주주 환원과 경영권 보호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벌써 임기 2년 차에 접어들었다. 회원사들로부터 ‘일을 가장 잘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1년 8개월이 지나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회장 후보 시절 약속한 단기적·중장기적 과제들이 있다. 일부 성과도 있고, 아직 해야 할 일도 많다. 단기 과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였다. 증권사들의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에 대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부동산 시장이 안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로, 금융투자소득세와 관련해 국회와 관계 당국에 문제점을 건의해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노후 대비를 돕기 위해 은퇴 시점에는 자산이 쌓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그 결과로 9월 24일 자산운용사 공동 브랜드이자 퇴직연금 상품인 ‘디딤 펀드’가 출시된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에도 주력해 오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지정학적 요인보다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들에 기인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올해 초 금융투자협회 차원에서 자본시장 밸류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국제 세미나를 여는 등 다양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금융투자 업계 CEO들과 대표단을 구성해 직접 해외로 나가 의견을 교류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자본시장 변혁에 관심이 많으며, 밸류업이 지속 가능할지 궁금해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국내 자본시장을 밸류업하는 방향으로 어젠다를 발굴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 자본시장 선진화 및 밸류업과 관련해 배당과 주주 환원이 중요하게 언급되는데.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방안으로 배당 세제 개편을 제안한다. 현재 지배주주들이 배당을 받으면 높은 세금(49.5%)을 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배당 유인이 떨어진다. 세제 개편을 통해 배당을 유도한다면, 소액 주주들도 혜택을 받게 된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도 중요한 부분이다. 올해 들어 자사주 소각 공시가 많이 늘어났으며, 기업들의 주주 환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이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다.”
-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조건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소각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가 걱정될 수 있다.
“기업 경영자들은 자사주 소각 논의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경영권 방어 문제를 언급한다. 경영자 보호는 중요한 이슈다. 거버넌스와 관련해서 이사회의 주주 충실 의무를 상법 개정을 통해 강화하자는 논의가 있는데, 이는 경영 활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주주 환원과 경영권 보호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안건들이 공론화되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 이사회 구성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는지.
“이사회 구성도 중요하다. 현재 이사회는 지배주주 중심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들은 사외이사나 노동이사를 참여시키기도 한다. 또 소액 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자는 논의도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은 기업 거버넌스 개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사회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 지배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사회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배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이사회가 회사와 주주의 이익 모두에 충실하도록 상법 개정이 실현된다면,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밸류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다양한 자리에서 의견을 듣고 있을 텐데.
“적극적으로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다행히 국회나 정부 모두 자본시장 밸류업이라는 큰 방향에 공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또 저출산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과 은행 예금에 묶여 있다면 국민들이 노후를 준비하기 어렵다. 자본시장 활성화·선진화는 국민들의 경제적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 밸류업 지수가 발표되면 관련 ETF나 상품들이 나올 텐데, 이와 관련해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신지.
“현재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기업 밸류업 지수를 개발 중인데, 지수에 어떤 기업을 포함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논의 중 하나다. 지수가 발표되면 운용사들은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나 펀드 등 상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에서 밸류업 지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에서 이 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투자자들에게 밸류업 관련 상품에 대해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인터뷰가 끝나 지난 9월 24일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지수를 공식 발표했다.)
-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자본시장 발전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MSCI 지수에서도 하드웨어 측면에선 세계 13위 선진국이지만, 자본시장 측면에선 아직 신흥국 입장이다. 장기적인 자본시장 발전 방안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오래된 이슈다. 다행인 점은 올해 들어 외환 거래 부문에서 자본시장 접근성 개선이 이뤄진 것이다. 특히 증권사들의 일반 환전 문제가 해결됐으며, 외환 거래 시간을 연장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가 이뤄졌다. 또한 통합 계좌 도입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손쉽게 한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외국인 투자 등록을 해야만 투자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법인식별번호(LEI) 시스템을 통해 절차가 간소화됐다.”
- 공매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개인투자자들의 불만 해소에 회장님이 기여한 바가 있지 않나.
“당국과 거래소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공매도는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법 공매도가 문제가 됐다. 하지만 내년 3월까지 공매도 전산화로 잔고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불법 공매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 회장님은 ETF 육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제가 처음 ETF를 접한 건 2010년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ETF가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트렌드를 보면서 ETF가 앞으로 엄청난 성장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저뿐만 아니라 회사와 그룹 차원에서 ETF 시장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ETF 시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것처럼 급상승하는 모양새다. ETF는 다양한 투자 상품을 대체할 수 있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 불확실성 시대를 넘어 초불확실성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에,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개별 종목을 선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들이 ETF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최근 ELS 문제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는데, 과거 회장님이 ELS 대신 ETF로의 전환을 권고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주가연계증권(ELS)은 과거에도 여러 이슈로 인해 고객들과 분쟁이 있었고, 최근에는 손실을 제한하는 보수적 주가연계상품(ELP)이 등장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파생상품 특성상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투자자 보호를 위해 판매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충분히 교육받고 설명할 수 있는 프라이빗뱅커(PB)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져야 하고, 일반 창구에서는 가급적 판매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홍콩ELS 문제와 같은 큰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융 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더 높은 전문성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어 ISA에 대한 회장님의 의견을 요청한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세법 개정을 통해 비과세 한도와 납입 한도가 상향 조정되는 안이 발표됐다. 국회에서도 다양한 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혁신적으로 개편해줬으면 좋겠다. 저는 ISA 계좌를 평생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간동안 발생하는 이자·배당·투자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가 오랫동안 제안해 온 것 중 하나는 가입 연령을 낮추는 것이다. 현재 ISA는 19세 이상만 가입 가능하다. 저희가 추가로 제안한 것은 주니어 ISA다. 태어나서부터 18세까지 부모나 조부모가 자산 형성을 도와주고, 18세가 되면 학자금이나 자립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인이 됐을 때는 증여세 면제 혜택도 필요하다.”
- 일반 국민들은 상속세와 증여세 관련 이슈에 관심이 많다. 이를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금융 교육도 이뤄지고, 세대 간 자산 이전을 통해 부모와 자녀 간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나아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자산 측면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도 본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생과 고령화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고령층이 자산을 젊은 세대로 이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령층의 소비 성향은 매우 보수적으로, 이는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요인이다. 그래서 ‘주니어 ISA’와 같이 자산을 젊은 세대로 빨리 이전시킬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 자산이 축적되더라도 순환되지 않으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개인형퇴직연금(IRP)과 관련해서도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퇴직연금은 노후 대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금이다. 현재 퇴직연금 자산 중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묶여 있어 자산 운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대 예금 금리로는 30년 이상 복리로 운용을 하더라도 의미 있는 자산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협회와 운용사 및 증권사들이 뜻을 모아 공동 브랜드로 ‘디딤 펀드’를 만들었다. 퇴직연금 펀드는 보통 타깃데이트펀드(TDF)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디딤 펀드도 퇴직연금 펀드라는 인식을 만드는 것이 과제다.”
- ETF나 사모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으로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됐다. 공모펀드도 나름의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회장님도 공모펀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공모펀드는 ETF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다. 매수나 환매 시 번거로운 작업을 거친다. 대면 거래를 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운용 내용은 깜깜이인 경우가 많다. ETF는 지금 몇몇 회사에 의해 과점화된 상태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운용사들이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공모펀드도 많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모펀드 상장이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혁신금융 서비스 신청을 했으며, 관련 전산 개발도 진행 중이다. 올 12월 말에는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가입 절차와 비용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또 수익률 비교도 더 쉬워진다.”
-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해서는 어떠한 견해를 밝히고 있나.
“자본시장은 불확실성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여야가 빠르게 합의해 해결하기를 바란다. 금투세 원안에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저희는 개선책을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원천징수에 관한 것이다. 당시 급하게 도입하다 보니 원천징수를 증권사에서 하도록 했다. 원천징수를 하려면 이를 위한 전산 시스템 개발과 기록 유지가 필요하며, 5년간의 손익 통산도 해야 한다. 이는 매우 복잡한 구조로, 개발에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종합소득세와 양도소득세 시스템을 기반으로 신고 납부 체계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금투세도 양도소득세의 일종이기 때문에, 신고 납부가 가능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매매 차익과 이자·배당소득을 모두 합산해 배당소득으로 과세하는 방식은 펀드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분배를 하는 펀드들이 적용 대상이다. 월지급식 펀드, 월지급식 ETF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분배형 펀드에 투자한다면 종합과세에 들어가면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이를 꼭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한국 증시를 보면 신진대사가 잘 안 이뤄진다. 사실상 좀비기업들이 상장 폐지되지 않고 있다. 은행과 달리 증권 시장은 신진대사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지 않나.
“현재 비상장사나 스타트업에 대해 자금 공급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벤처투자 등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공공기금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민간 쪽에서 공급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스타트업들이 엑시트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상장밖에 없다. 그런데 예상만큼 성장이 잘 안 되면서 좀비기업화되곤 한다. 개인이 비상장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를 비롯한 세컨더리 시장을 활성화해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미국은 상장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을 통해 엑시트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좀비기업이 바구니에서 빠져줘야, 좋은 기업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한다.
“자본시장이 우리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 투자자들도 리딩방이나 어떤 의견에 현혹되지 말고, 좀 더 깊이 연구하고 전략을 세워 투자하시기를 바란다. 또 아무리 좋은 종목으로 보여도 자금의 100%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뜨고 지는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1년에도 몇 번씩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때를 위해 자금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또 빚투는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빚투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가급적 생업에 종사하시면서, 전문가에게 맡겨 투자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의 성공 투자를 기원한다.”
대담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 정리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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