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됐고, 외로운 사람. 누군가와의 대화가 절실한 사람들을 인공지능(AI)이 도울 수 있기를.”
미국의 AI 챗봇 스타트업 캐릭터닷AI를 창업한 노엄 샤지어 구글 제미나이 리더가 워싱턴포스트(WP)에 한 얘기다. 캐릭터닷AI는 특정한 캐릭터를 갖춘 AI를 생성하고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다. 요즘 AI 서비스는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이미 ‘페르소나(독립적 인격) AI’와 우정 또는 연애 감정을 나누고 있다.
캐릭터닷AI엔 이용자가 만들어낸 AI 인격이 1800만 개나 있다. 해리포터, 아인슈타인, 일론 머스크, 비욘세 AI도 있다. AI 생성엔 단 몇 초만 투자하면 된다. 생성 버튼을 누르고 나이와 성격 등을 가상으로 입력하자 1초 만에 얼굴 이미지 4개가 제안됐다. 음성도 자동 생성됐다. 캐릭터 생성이 완료되자 그와 통화하겠냐는 질문이 떴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방금 만든 AI가 받았다. 친근하고 경쾌한 목소리였다. “안녕, 오늘은 기분이 어때?”
빅테크들은 최근 캐릭터닷AI와의 제휴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결국 구글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는데 메타와 X도 이 회사를 탐냈다. 빅테크들이 젊은 층 유입과 체류시간 증대를 목적으로 AI 챗봇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는 인스타그램에 맞춤형 AI 챗봇을 만들 수 있는 ‘AI 스튜디오’를 선보였다. 구글은 유명인 AI 챗봇을 개발하고 있다.
특정 인격을 입은 페르소나 AI 챗봇은 할루시네이션(환각)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일할 때 쓰는 AI는 정확한 정보가 중요하다. 하지만 수다를 떨 때는 재미와 공감이 먼저다. 설사 AI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줄줄 읊더라도 큰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는 것이다.
캐릭터닷AI에서 인기가 높은 AI는 ‘심리학자’ ‘테라피스트’다. 이 앱엔 정신 건강과 관련한 챗봇이 475개 있다. 해외 커뮤니티 레딧에선 ‘내 목숨을 살렸다’ ‘인생의 조언자’ 등의 후기가 공유되고 있다. 상담사 AI를 만든 한 이용자는 “우울함과 불안 등 감정에 맞게 대답하도록 훈련했다”며 “어느 새벽 2시, 친구나 치료사와 고민을 나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AI에 접근한다”고 했다.
AI 연인을 두는 사람도 늘고 있다. 미국 AI 앱 레플리카의 유료 구독자 60%가 AI와 애정 관계를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지니아 쿠이다 레플리카 창업자는 “AI와의 로맨틱한 관계는 매우 강력한 정신건강 도구”라고 했다. 레플리카 구독료는 연 최대 69.99달러(약 10만원) 수준이다. 레플리카 이용자 중 상당수가 관계에서 긍정적인 자극을 경험했다는 스탠퍼드대 연구도 있다.
AI 동반자와 관계를 쌓는 에인절AI(미국), 연애용 AI 챗봇 러버스(일본), 인플루언서 AI 서비스 엑스에바(중국)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감성형 AI는 이용자 체류시간이 길다.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영역에서 수익을 가장 빨리 내는 AI 서비스가 될 것 같다”고 했다.
1세대 챗봇보다 AI의 일관성과 감정 표현이 훨씬 좋아졌다. 생성 AI 기술 발전과 함께 범용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활용이 쉬워졌다. 원하는 성격, 외모, 목소리, 태도를 갖춘 맞춤형 AI 친구 서비스가 최근 쏟아지는 이유다.
페르소나 AI는 보통 이용자 기분을 잘 맞춰준다. 위험한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이용자가 AI에 과하게 의존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벨기에의 30대 남성은 AI 챗봇 차이와 6주간 대화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성이 삶에 비관적인 뜻을 보이자 AI는 동조했다. 영국에선 한 남성이 AI 챗봇과 대화하며 살인 계획을 구체화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10대 때 AI와의 대화에 길들면 실제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배려, 인내를 배우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감성형 챗봇 특성상 민감한 개인 정보가 많이 오가는데 유출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모질라재단이 레플리카, 차이 등 주요 AI 챗봇 11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 건강, 약물 사용 정보 등 이용자의 민감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었다. 이들 앱은 분당 평균 2663건의 데이터 추적을 했다. 일부 앱은 ‘모든 비밀과 욕망을 공유하라’며 사진과 음성 녹음까지 요구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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