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ETEC 부지 두고 서울시·강남구 '동상이몽'

입력 2024-09-24 18:32   수정 2024-10-02 16:30


서울 대치동의 노른자위 땅인 서울무역전시장(SETEC) 부지를 놓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갈등을 빚고 있다. 강남구는 기존 청사가 5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인 만큼 이곳에 새 보금자리를 짓겠다는 방침이지만 서울시는 SETEC의 컨벤션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 전 이곳에 ‘제2시민청’을 넣겠다며 당시 신연희 전 구청장과 극심한 대립을 겪은 사실을 비춰 볼 때 서로 입장이 뒤바뀐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SETEC 부지 놓고 시·구 갈등
24일 서울시와 강남구에 따르면 시는 최근 완료한 ‘학여울역 일대 거점형 복합개발 기본구상 수립 용역 보고서’에서 시유지인 SETEC 부지 가운데 강남구와 교환할 수 있는 비율을 최대 33%로 못 박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강남구가 공공 청사를 새로 짓겠다며 요구한 40~45%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SETEC은 시가 2005년부터 운영한 중소기업 전용 전시장(약 4만444㎡)이다. 코엑스 등 다른 전시장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중소기업 제품 전시회, 일자리 박람회 등에 주로 활용됐다. 구가 이곳에 새 둥지를 마련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1975년 조달청 창고 건물을 개조해 쓰고 있는 삼성동 청사(학동로 426)가 노후화돼 민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치동에 사는 한 주민은 “업무시설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한 마음으로 행정 업무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8년 전과 정반대로 바뀐 양측 입장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6년 서울시는 전시장을 철거하고 제2시민청을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그러자 당시 인근 주민들과 신 전 구청장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당초 학여울역 일대를 잠실 코엑스 등과 연계한 ‘전시컨벤션산업(마이스·MICE)’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원안을 고수하라는 얘기였다. 주민들은 리모델링 공사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이 2021년 취임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제2시민청 건립은 백지화됐고 양측은 원안을 추진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이 신청사 건립을 포함해 달라는 제안서를 냈다. SETEC 부지에 업무시설은 물론이고 공원, 전망대, 체육시설도 갖춘 ‘행정복합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용역을 거쳐 현 강남구청이 있는 삼성동 땅과 SETEC 부지 일부를 맞교환하는 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광과 마이스산업을 활성화하려면 강남구가 요구한 만큼의 땅을 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영한 서울시의원(국민의힘)에 따르면 SETEC에서 열린 행사는 2006년 66회, 2010년 62회, 2014년 86회, 2018년 77회로 평균 70회 수준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에는 행사 건수가 34회로 반 토막 났다가 이듬해(63회)부터 수요를 회복해 지난해 총 84회 행사를 열었다.

서울시는 2031년 잠실 스포츠·MICE 복합개발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SETEC의 현 상태를 유지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서울시가 지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도 학여울역 일대 전시 기능을 살리는 쪽으로 도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건립 면적, 위치 등은 향후 서울시와 협의해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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