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엘앤에프, LG화학, 중국 업체들과 지난 2분기부터 양극재 등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 물량 및 납품가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는 경기 안성 등지에 건설할 배터리 연구개발(R&D) 단지에 연 1~2GWh 규모의 배터리 시제품 제조 설비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GWh는 전기차 1만3000대에 들어가는 물량이라는 점에서 배터리업계는 현대차가 대규모 테스트를 통해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나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생산 제품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보다 효율이 높은 삼원계 배터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내재화는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화두다. 미국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BYD)에 이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일본 도요타도 최근 배터리 자체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배터리 자체 개발에 성공하면 차값을 낮출 여지가 생길 뿐 아니라 연계 기술을 통해 전기차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배터리 기술을 내재화해도 SK온 등 셀 제조업체로부터 조달하는 배터리 규모는 줄지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7년 車 1만대분 배터리 제조설비 구축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배터리와 전기차를 한 묶음으로 설계·생산하자 각종 비용이 줄어들 뿐 아니라 각각의 차에 맞게 배터리를 최적화하는 노하우도 손에 넣게 된 것. 배터리 소재를 각각 포장해 팩에 넣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모든 소재를 한 번에 포장하는 ‘셀투팩’(CTP)과 차체와 배터리팩을 일체화하는 ‘셀투섀시’(CTC) 등 신기술이 BYD에서 나온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BYD는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전기차 생산비용의 20~30%를 절감했다”며 “배터리 내재화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완성차 업체라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배터리업계에선 현대차가 이미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의 R&D 역량과 공정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기 의왕연구소와 마북연구소를 중심으로 10년 넘게 배터리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서울대와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업체들도 현대차의 배터리 기술력에 크게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배터리 개발을 본격화하면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한 단계 점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터리 밸류체인은 원자재(리튬·니켈 등)→배터리 소재(양극재·음극재 등)→배터리 셀→완성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여기에서 배터리 셀 기술을 내재화하면 전기차와 통합 개발할 수 있는 만큼 생산효율이 대폭 높아진다. 현대차는 배터리 셀 내재화뿐 아니라 원자재 도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 광산기업과 수산화리튬 공급 계약도 맺었다.
전기차와 배터리 성능 개선 효과 역시 얻을 수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를 동시에 설계·개발하면 배터리 용량과 충전 속도, 안전성을 각각의 차량 특성에 맞게 미세 조정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배터리를 전기차 차체와 통합하는 셀투비히클(CTV) 기술을 개발 중인데, 전 과정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폐배터리를 수거해 새 배터리로 만드는 재활용 사업을 벌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면 언젠가 직접 생산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며 “미국 테슬라처럼 일부 물량을 자체 생산하면서, 이를 지렛대 삼아 배터리 셀 업체의 납품단가를 낮추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전기차 핵심 부품인 전력 반도체도 자체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의 권위 있는 연구기관과 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 반도체 자체 개발에 성공하면 규격화된 범용 반도체를 쓰는 경쟁사들과 차별화된 전기차 모델을 개발·판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상훈/김형규/김우섭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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