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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 ‘킬러앱’은 왜 없을까?
1년 가까이 기고를 해 왔다. 가상자산에 대한 글을 쓰면 항상 ‘코인은 아무 쓸모가 없는 버블 덩어리’라는 취지의 댓글이 달린다. 일반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하는 코인이나 코인을 사용하는 ‘킬러앱’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코인은 쓸모가 없다’라는 취지의 댓글은 일견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지금까지 코인을 연구하고 발행한 전 세계 수많은 사업가와 개발자들이 모두 망상에 취해 있거나 한탕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아니었다면, 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쓸모있는 코인이 아직 없는 걸까?
코인의 쓸모는 SEC가 차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쓸모 있는 코인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차단해 왔다. 비트코인이 오랜 무명 시절을 벗어나 인기를 얻어가고 이더리움이 초기 코인 공개(ICO) 시스템을 대성공시키며 빠르게 명성을 얻어갈 무렵, SEC는 대중의 일상생활에 의미 있는 시도를 하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하나하나 격추하기 시작했다.몇 가지 예를 소개한다.
리플(XRP): 국제 송금의 혁명
2012년 설립된 리플은 기존 국제 송금 시스템의 높은 수수료와 긴 처리 시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했다. XRP 토큰을 통해 빠르고 저렴한 국경 간 거래를 실현하려 했으며, 특히 통화가치가 높은 나라에서 돈을 벌어 자국에 송금하려 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SEC는 XRP를 미등록 증권으로 규정하고 2020년 말 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법원에서 리플이 ‘사실상’ 승리를 거둘 때까지 리플 사의 사업은 장시간 멈추어야 했고, 이제야 족쇄가 풀린 리플 사는 2020년과 전혀 다른 시장 지형에 적응해야 한다.
LBRY(LBC): 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새로운 생태계
2015년 시작된 LBRY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중앙화된 플랫폼의 검열과 수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에게는 더 다양한 콘텐츠 접근성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SEC가 2021년 LBRY 플랫폼의 LBC 토큰 판매가 미등록 증권 판매라며 소송을 걸었고, 2022년 SEC가 승소하며 프로젝트는 사실상 종료되었다.
킥 메신저(KIN):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2017년에 시작된 Kik은 메시징 앱에 암호화폐를 통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경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사용자들이 콘텐츠 생산과 소비에 참여함으로써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경제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2019년 SEC가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소송을 걸었고, 프로젝트는 멈추어야 했다.
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TON): 글로벌 금융 포용성
2018년 시작된 텔레그램의 TON 프로젝트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들에게 즉각적이고 저렴한 국제 송금, 마이크로페이먼트, 탈중앙화된 신원 확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은행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사용자들에게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이었다. 그러나 2019년 SEC의 미등록 증권 소송으로 이 프로젝트는 메인넷 출시가 좌절되었다. (Telegram Open Network는 중단되었지만 이후 The Open Network가 새로운 기반으로 시작한다.)
SEC가 직접 나서 격추한 위 네 개의 프로젝트들은 사업의 기반이 갖추어지고 본격적인 확장의 준비가 된 프로젝트들이었다. 즉, 사업이 계속 진행되었을 경우 일반 대중들이 실제로 코인을 사용하는 소위 ‘유즈케이스(use case)’, ‘매스어돕션(mass adoption)’이 가능했던 프로젝트들이었다.
SEC는 이 프로젝트들의 유즈케이스가 불법이기 때문에 규제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모금하는 과정이 증권이라고 판단했다는 근거만으로 소송을 걸었다. 여기에 대해 SEC의 헤스터 퍼스(Hester Peirce) 위원(commissioner)은 24일 열린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규제의 명확성 부족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법적으로 부정확한 관점을 취했다”라고 비판했다.
SEC는 상기한 네 개의 프로젝트만 ‘셧다운’한 것이 아니다. 리플 소송을 전후해서 전 세계 대부분의 크립토 프로젝트들은 SEC의 자의적이고 모호한 ‘증권성 소송’을 피하기 위해 사업 구조를 변경하고 특정 단어 사용을 피하는 등 수많은 노력을 해야 했으며, 많은 프로젝트가 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다. 또한 이 ‘증권성 리스크’로 인해 크립토 프로젝트 특유의 낯선 프로세스나 단어들이 등장했고, 특이한 방식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경향이 생겨나기도 했다. 법적인 불명확성으로 인해 투자자들에게도 많은 위험이 발생했다.
플라이피쉬 클럽 사건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플라이피쉬 클럽 NFT에 대한 SEC의 소송이 화제가 되고 있다. 플라이피쉬 클럽은 뉴욕 한복판에 하이엔드 스시 오마카세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프로젝트였다. NFT를 통해 회원권을 판매하는 혁신적인 레스토랑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으며, NFT 기술을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적용한 흥미로운 시도였다. 회원들은 NFT를 통해 독특한 다이닝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필요시 자유롭게 회원권을 거래할 수 있었다. 이는 전통적인 회원제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하지만 SEC는 이 NFT 판매를 미등록 증권 판매로 판단하고 소송을 걸었다. 법원이 플라이피쉬 측의 유무죄를 판결하기도 전에 SEC와 플라이피쉬 클럽 측은 영업 중지(cease-and-desist order)와 75만 달러의 민사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지난 9월 16일에 합의했다.
코인 발행도 아니고 스시집 회원권 NFT마저 증권으로 간주해 규제를 가해야 하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SEC의 5명 위원(commissioner) 중 헤스터 퍼스(Hester Peirce), 마크 우에다(Mark Uyeda)도 플라이피쉬 클럽 NFT는 증권이 아닌 유틸리티 토큰이며, 회원권을 판매하는 창의적인 방식이고 투자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SEC의 결정에 항의했다. 또한 그들은 SEC의 이번 조치가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비판하며, ‘이 사건이 현재와 미래의 선례로서 해롭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실험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법의 영역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SEC의 모든 조치가 다 틀렸던 것은 아니다. SEC는 실제 사기범들을 처벌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증권성’을 무기로 자의적 고소·고발을 남발한 것이다. 리플 정도 규모의 사업체는 SEC와 소송전을 해나갈 여력이 되지만, 소규모 업체들에는 소송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프로젝트를 종료할 정도의 타격이 된다. 리플 사는 4년간 비싸고 고통스러운 소송전을 견딘 끝에 법원으로부터 SEC의 해석과 조치가 과도하다는 결론을 끌어냈다.시장 참여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일단 고소해서 주저앉히는’ 식의 시장 규제 때문에 진지하게 블록체인 사업을 고려하던 주체들은 진입을 꺼리고 있다. 혁신적인 가상자산에 대한 시장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기에, ‘한탕’을 노리는 업자들이 법적 공백을 노린다. 코인과 관련된 사기 사건이 부각되며 미국 여당의 ‘코인은 나쁘다’라는 도그마는 더욱 힘을 얻게 되고, SEC의 무차별 규제에도 명분이 실렸다. 그렇게 미국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고, 2024년 대선에서 가상자산 업계가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강경 지지하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블록체인과 탈중앙화를 활용한 수많은 의미 있는 시도들이 좌절되고 좌초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 SEC가 무차별 고소로 시장 성장을 막은 것처럼 우리나라는 2017년 ICO 전면 금지와 기관의 가상자산 거래 금지로 시장 성장을 차단했다. 이후 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국내 법인은 취득한 가상자산을 현금화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졌다. 즉, 우리나라 기업은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전개할 방법이 대부분 차단되어 있다.그러나 역외에 법인을 설립하여 가상자산을 발행하고 거래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다.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 규정을 준수하며 현지인을 채용하고 현지에 세금을 납부하면서 사업을 하는 것은 작은 규모의 사업체들에는 너무 부담이 큰일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정부의 기조에 맞추어 가상자산 사업 진출을 꺼리고 있고, 금융기관들은 2017년 조치로 접근이 아예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가상자산 사업은 아주 모호한 규모의 업체들만이 어렵게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자의적이고 모호한 증권성 리스크처럼, 우리나라도 불법도 아니고 완전한 합법도 아닌 모호한 편법을 통해서만 가상자산 사업이 진행 가능한데, 이마저도 원화거래소 이용 금지라는 그림자 규제에 한 번 더 차단당한다. 환경이 이러니 합법의 영역에서만 사업을 영위하고 싶은 규모 있는 사업자는 가상자산 사업 전개를 꺼리게 되고, 일반 대중에게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무법과 비법의 영역에서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준동한다.
지난 20일 디지털자산정책포럼·김재섭 의원실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금융당국 측 패널은 “미국의 정책 방향이 향후 우리나라의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미국 가상자산 업계의 성장을 제멋대로 저지해 온 SEC는 미국 의회와 법원으로부터 끊임없이 지탄받고 있다. 초밥집 회원권 NFT도 증권이라며 고소하는 SEC에 작년 9월 미국 하원은 “포켓몬 카드도 증권이냐”라는 질문을 했고, 머뭇거리던 겐슬러 위원장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국내의 2단계 입법은 미국보다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기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명확한 법적 기반 위에서 가상자산이 대중의 일상에 합법적이고 혁신적인 혜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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