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린이(러닝 입문자를 뜻하는 러닝과 어린이의 합성어)들의 무분별한 카본화(탄소 삽입 러닝화) 착용으로 인한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주·야간 2교대로 전국의 트랙 및 천변에서 카본화 상시 단속을 시작합니다. 협조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사단법인 카본화 단속협회 명의로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카본화 상시 단속 안내문'이란 글이 화제가 됐다. 물론 해당 협회나 안내문 모두 가짜로 밝혀졌지만, 러너들 사이에선 "카본화 논쟁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러닝 인구가 점차 늘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신는 카본화를 초보 러너가 착용하는 문제를 두고 이른바 '카본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부상 위험성이 과장됐는지에 대해 러너들 의견이 제각각 달라서다.
'초보자 부상 유발' vs '텃세'…'카본화 논쟁' 뭐길래
카본화란 신발 쿠션에 얇은 카본 판과 고성능 폴리머 소재를 넣어 반발력을 인위적으로 높인 러닝화를 뜻한다. 일반 제품 대비 탄력성이 좋다. 지난 201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엘리우드 킵초게가 신으면서 널리 알려진 뒤, 주로 프로 마라톤 선수들이 착용해왔다.러닝 열풍에 힘입어 카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면서 러너들 사이에선 '카본화 논쟁'이 한창이다. 카본화가 러닝에 막 입문한 초보자들의 부상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진위를 두고 양측 의견이 맞서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수상한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의 최근 발언이 이 논쟁에 제대로 불을 지폈다. 황 감독은 지난달 한 유튜브 영상에 출연해 "초보 운전자가 배기량 6000CC 스포츠카를 타면 사고가 난다"며 "폼도 안 만들어진 상태에서 카본화를 얘기하는 것이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러너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A씨는 황 감독을 두둔하며 "일반인이 기록 향상 목적으로 러닝화에 목매는 건 아이러니"란 의견을 냈다. 이에 "잘 뛰는 이유가 신발 때문이란 생각부터 잘못된 것", "달리기 기록도 자기 실력 탓이 8할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등 반응이 나왔다.
반면 러닝에 입문 7개월 차인 2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카본화 구매를 고민 중인데 초보자가 '장비빨' 세운다는 식으로 비치는 것 같다 기분이 상한다"며 "원래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운동이 달리기 아니냐. 이상한 텃세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러닝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B씨는 "카본화가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버 트레이닝'을 하니까 부상이 오는 것"이라며 "조금씩 신발에 적응하면서 신는다면 초보자들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점차 격화되는 카본화 논쟁을 두고, 과거 '언더아머' 밈이 연상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밈은 헬스 초보자들은 스포츠 의류 브랜드인 '언더아머'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카본화 단속반'도 우스갯소리로 나왔던 헬스장 언더아머 단속반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논쟁의 쟁점인 카본화가 실제로 초보자들에게 부상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연구 논문이나 자료가 없다.
전문가들은 스프링 판을 신발에 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카본화는 분명 러너들의 부상을 유발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이를 '초보자'에 한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주강 가천대 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카본화가 일반 러닝화보다 근육에 부하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마다 편차가 있다"며 "초보 러너라고 해도 하체 근육 상태가 좋고, 달리는 자세가 안정적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이들에게만 부상을 유발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장거리 마라톤에 따른 부상으로 내원하신 분들을 보면 발의 힘이 어디에 가해지느냐에 따라 부상의 정도가 달라진다"며 "카본화는 가운데, 앞 등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제품마다 천차만별이라 자신에게 맞는 상품만 찾는다면 초보자라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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