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상승이 경제 호황의 증거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주식시장에 대한 경고를 내놨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연이어 금리 인하 사이클을 시작한 데 대해 투자자들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난 11일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의 자택에서 만난 디턴 교수는 “주식시장이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최근 기업들의 해고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기업이 직원을 대량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면 주가는 오르겠지만 실직한 사람들은 경제가 끔찍한 상황이라고 느낄 것”이라며 “주식시장은 자본의 가치를 평가할 뿐”이라고 짚었다.
디턴 교수는 미국이 상처로 곪아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부인이자 프린스턴대 동료인 앤 케이스 교수와 함께 연구해 정의한 ‘절망사(deaths of despair)’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디턴 교수는 “미국에서 자살과 약물 과다 복용 및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계속되고 있다”며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25세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2010년 이후 계속 줄어왔다”고 지적했다.
디턴 부부는 2020년 ‘절망사와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글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미국 인구의 3분의 2는 대학 학위가 없으며, 정부가 이들의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와 최빈층의 지출 정보 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디턴 교수는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며 미국에서 경제의 낙수 효과가 약화되고 취약계층의 삶이 더욱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선 후보에 오를 정도로 지지를 받는 데도 이 같은 경제 상황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분노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턴 교수는 “대선 TV 토론에서 발끈한 남자(트럼프 전 대통령)가 대표하는,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미국에) 많이 있다”며 “이런 미국의 경제 상황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저서(사진)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두고 “포퓰리스트는 새로운 폭력 집단이며 갱단보다 더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디턴 교수는 이 같은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진 않았다. 그는 “공급망 혼란으로 모든 상품이 동났고, 배들은 하역할 수 없었으며 자동차를 사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일어날 걸 예측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만큼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쓰지 않았던 유럽도 인플레이션을 겪은 점을 지적하며 “미국이 유럽에 경기 부양금을 지급한 건 아니었다”고 짚었다.
디턴 교수는 오랜 기간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불러오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그는 미국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가 형성된 요인과 관련해 노동조합의 압박에 따른 임금 인상 등보다는 무역적자가 미친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산업이 쇠락한 기간을 살펴보면 실제로 임금은 내림세를 보였다”며 “가장 큰 원인은 대규모 무역적자”라고 말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공고해지면서 달러 강세로 무역적자가 더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디턴 교수는 “물론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달러 가치가 매우 과대 평가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턴 교수는 존 롤스가 <정의론>을 통해 강조한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을 경제학에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롤스는 자존감을 위한 자원 중 하나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되는 느낌을 꼽았다. 경제학자들도 돈과 수치에만 몰입하지 말고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여러 부분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생각하는 철학적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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