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는 연구개발특구가 2010년께부터 전국에 우후죽순 들어섰지만, 정작 입주 기업들의 상장 성적표는 크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구 내 기업 매출과 특허 출원 건수는 매년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기술이 금융 시장과 매칭될 수 있도록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개 광역특구, 10여년간 상장 12곳 그쳐
28일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광진갑)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덕을 제외한 4곳의 대형 광역특구(광주·대구·부산·전북)가 조성된 이후 신규 코스닥 상장 기업 수는 총 12곳(2022년 말 기준)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보면 광주(1곳), 대구(8곳), 부산(0곳), 전북(3곳) 등이다. 광주와 대구는 2011년, 부산은 2012년, 전북엔 2015년 특구가 각각 지정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10여년간 매년 1.2곳의 기업만이 상장에 성공한 셈이다.반면 특구 내 기업들의 실적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같은 기간 4곳의 대형 광역특구 내 입주 기업은 총 4801곳으로, 첫 조성 당시(1722곳)와 비교하면 2.8배가량 늘었다. 기업들의 총매출은 16조5830억원에서 35조5090억원으로 2.1배, 임직원 수는 7만4260명에서 13만7025명으로 1.9배, 특허 건수는 1만5004건에서 5만5015건으로 3.7배가량 불어났다.
연구개발특구는 과기정통부가 공공기술 사업화의 핵심 거점 지구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사업이다. 1972년 첫 지정된 대덕단지의 성공적인 안착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 총 5개의 대형 광역특구와 12개의 강소특구가 운영되고 있다. 다만 특구들의 상장 성적표는 초라하다. 기술특례 상장으로 상장한 기업(총 21곳)은 대덕 특구에서만 16곳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광역특구보다 규모가 작은 강소특구의 경우 상장이 더 어려운 분위기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강소특구에서 상장한 기업은 30곳에 그쳤다.
이 의원은 "코스닥 상장 실적이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은 특구가 양적 성장에만 집중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특구 내 기업들이 전국 지방에 위치한 만큼 지리적 여건상 정책 금융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기부 관계자는 “특구 내 기업들은 지방에 주재하고 있는 만큼 액셀러레이터(AC),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을 만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과기부 차원에서 지역 금융기관 투자를 연결해주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 선진국, 역점 사업 추진…정부도 "적극 대응 계획"
연구개발특구는 미국과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등 많은 선진국에서 정부 차원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최근 성과가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 중 하나는 중국의 '하이테크산업개발구'다. 이 의원이 국회도서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1988년 베이징에 처음 조성된 개발구는 작년 11월 기준 총 178개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개발구 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은 1조 위안(183조원)을 돌파했다. 개발구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2025년 개발구 수를 220개로 늘리고, 1684개(2020년 기준)였던 기업 상장 건수도 2000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정부도 연구개발특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우선 과기정통부는 강소특구 1기 사업 종료 시점인 내년 1월에 맞춰 우수한 성과를 낸 기업들에게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개편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위해 올 초 한국국책연구원(KDI)에 강소특구 사업에 대한 적정성 재검토 연구를 의뢰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광역특구의 경우에도 기재부, 국무조정실 등 범부처적으로 추가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이 의원은 “대덕단지 이후 연구개발특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기서 판도를 바꿀 혁신적인 유니콘 기업이 더 나와야 한다”며 “기술과 금융이 만나야 더 큰 기업이 나오고 자본 시장도 성장한다. 정부는 연구개발특구에서 더 많은 기업이 성장하고 상장까지 이어지도록 범부처 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말했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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