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오일패권 되찾겠다"…12월 본격 증산 예고

입력 2024-09-27 18:04   수정 2024-10-08 16:29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는 12월부터 공격적인 증산에 나서기로 한 것은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가 사상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한 미국에 국제 원유시장의 헤게모니를 빼앗긴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중심으로 한 담합 산유국들은 감산을 주도하는 사우디에 반기를 들며 분열 양상을 보여왔다. 유가를 떠받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만 뺏기고 있다는 판단하에 증산으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치킨 게임 나선 사우디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사우디 당국이 12월 1일부터 증산을 재개하는 방안에 전념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유가가 더 떨어지더라도 이를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그간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로 유지하는 목표를 비공식적으로 고수해왔지만 이를 포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배럴당 100달러는 사우디 정부의 대형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지돼야 하는 최저 기준선이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장기간 저유가 상태가 지속되더라도 더 이상 시장 점유율을 다른 국가에 빼앗길 수 없다는 결단을 내렸다. 고유가에 의존하는 대신 각종 프로젝트에 외환보유액을 활용하거나 국채를 발행하는 등 대체 자금 조달 옵션을 활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사우디의 주요 전략 변화로 해석된다. 사우디는 2022년 11월 이후 OPEC과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를 통해 반복적으로 감산을 단행해왔다. 국제 벤치마크 유종인 브렌트유가 2022년 평균 배럴당 99달러로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고유가 호시절을 누렸던 국제 원유시장이 이후 하락세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중동 분쟁 등에도 불구하고 브렌트유는 이달 들어 배럴당 평균 73달러로 주저앉았다.

오는 10월부터 생산량 감축 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던 OPEC+는 유가가 계속 떨어지자 지난달 해제 시점을 2개월 연장해 12월로 미뤘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12월부터 증산에 나서기로 하면서 OPEC 회원국의 증산에 불을 댕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담합 국가들 간 분열
사우디의 그간 감산 방침은 전통 우방국인 미국과의 긴장을 야기하는 부작용도 빚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했을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 측에 생산량을 늘릴 것을 요구했지만 합의가 불발됐다. 이후 미국 행정부는 자국 내 셰일업계를 통해 원유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국은 지난해 미국 원유 생산량이 사상 최대로 늘어나며 석유 시장 점유율에서 사우디를 두 배가량 앞섰고, 이는 OPEC+의 감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분석으로 이어졌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브라질 등 다른 비(非)OPEC국가도 빠르게 원유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석유 탐사 및 시추 기술 발전으로 가이아나, 콜롬비아, 호주 등 더욱 다양한 국가가 석유를 대량 생산하게 된 것도 OPEC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OPEC 내부 분열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라크와 카자흐스탄 등 OPEC+ 회원국 일부는 감산 할당량을 초과해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고, 앙골라는 감산 조치에 불만을 나타내며 지난 1월 아예 OPEC을 탈퇴해버렸다.

사우디 관계자는 “여전히 다른 국가의 (감산 할당량) 준수 여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가 할당량을 지키지 않을 경우 사우디가 더 빠르게 증산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OPEC+ 감산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하루평균 200만 배럴 감산’ 부담을 짊어져 왔고, 현재 하루평균 890만 배럴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충격 등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유 수요 둔화 우려도 사우디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했다. 수요가 줄어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면 감산 효과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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