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밸류업 지수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출범 초부터 밸류업 지수를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수 편입이 예상됐던 종목이 대거 탈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을 포함한 고배당 종목이 리스트에서 대거 빠지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지난해 기준 배당수익률이 높은 종목 중 현대엘리베이터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목이 밸류업 지수 편입에서 제외됐다. 금융업의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 당연히 편입할 것으로 예상했던 KB금융, 삼성생명, 하나금융지주 등도 탈락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측은 “주주환원 규모만을 선정 기준으로 하는 경우 배당보다는 미래 사업 투자 등을 통한 기업가치 성장이 중요한 고성장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밸류업 지수는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 다양한 질적 요건을 충족한 기업으로 구성됐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밸류업 지수 편입 구성 종목 선정을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잇따르자 기업가치 상승 여력이 있는 저평가주·중소형주 등 다양한 신규 지수 수요를 반영해 후속 지수를 순차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안에는 구성 종목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증권가에서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로 선정된 종목이 고주가순자산비율(PBR)과 고자기자본이익률(ROE) 종목이 대부분으로 밸류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종목만 따져보면 배당과 주주환원에 대한 평가가 낮아졌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배당주, 저PBR주 편입 제외…일본 밸류업 지수와 닮은꼴
우선 지수 산정 방식을 보면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코스피 67종목, 코스닥 33종목으로 총 100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거래소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적극적 참여 유도 차원에서 다양한 유형의 특례 편입 요건을 마련했다. 기존 증시가 IT 업종에 몰려 있고 밸류에이션 지표 편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산업군 내 상대평가를 적용, 지수를 균형 있게 구성한다는 것이 이번 밸류업 산정에 기준점으로 작용했다.
구체적으로 최근 2년간 손익 합산 적자인 기업은 지수 편입에서 제외됐고, 시가총액 상위 400종목을 유니버스로 해서 100종목을 최종적으로 가려냈다. 주주환원 역시 최근 2년 연속 배당금 지급이나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을 하지 않았으면 지수 편입에서 제외됐다. 주주환원 규모는 평가하지 않고 환원 여부만 따졌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2년간 PBR 지표 하위 50% 종목의 경우에도 지수 편입에서 제외했다. 다만 ROE 순위가 높은 종목은 대거 편입 종목에 선정됐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정책은 초기에는 저PBR 종목이 수혜를 입을 것처럼 판단했지만 밸류업 지수는 결국 PBR 하위 종목을 편입 배제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며 “이는 PBR이 낮은 기업, 즉 저평가를 유지하는 기업에 정책 메리트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정책은 PBR 1배 이하 종목은 편입을 배제하는 일본 밸류업 JPX프라임150 지수와 비슷한 점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고PBR, 고ROE 우량 종목 위주로 지수가 구성되며 저평가 가치주는 지수 편입에서 배제됐다”고 해석했다.
이번 밸류업 지수에서 주목할 부분 역시 최종 편입 여부를 업종 내 ROE 순위로만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번 밸류업 지수 선정에서 ROE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기업이 ROE를 제고하도록 유도하면서 동시에 투자자들의 투자 지표로서 ROE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배당수익률과 주주환원 노력 등은 2년 연속 시행 여부만을 따졌고, 주주환원은 자본효율성을 높여 ROE를 제고하는 측면에서만 평가를 받았다.
이번 지수 편입 과정에서 업종 쏠림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ROE와 PBR 지표는 동일 산업군 내에서 순위를 비교하고 선정하면서 업종 쏠림을 줄이려고 했다. 이는 금융이나 자동차, 지주, 통신 등 특정 업종 쏠림이 강했던 일본의 밸류업 지수와는 차별화된 것이다. 또 밸류업 지수에는 초대형주가 대거 탈락하면서 중형주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코스피200지수와 비교할 때 삼성전자의 투자 비중이 낮아졌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 성공 조건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일본의 성공 사례를 잘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민섭 DS투자증권 연구원은 “JPX프라임150 지수를 기반으로 출시된 일본 ETF의 성과를 추적해보면 지난 3월 15일부터 9월 20일까지 각각 ETF의 누적 수익률 차이는 5%에 불과했지만, 한국 밸류업 지수는 기존 코스피200지수와 KRX300지수에 대비해 우수한 장기적 성과에 차별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어 신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업과 투자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 JPX프라임150 지수가 발표된 지 약 2개월 만에 관련 ETF들이 상장한 것도 긍정적 사례로 비쳐진다. 당시 상장 초반에 1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되기도 했다. 투자자에게 밸류업이 필요해 보이는 종목을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장기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 밸류업 ETF도 상장 초기에는 흥행했다가 장기적 성장세를 보이지 않아서다.
또 수익성과 시장평가가 높은 기업에 관심이 커지는 데 반해 저PBR 종목군은 더욱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은 저평가된 종목을 선호하는 기관 입장에서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고PBR 위주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벤치마크로 추종하는 국내 기관이 있을지 여부가 관전 포인트”라며 “고평가 종목을 매수하는 근거는 해당 국가 및 시장의 중장기 성장성 담보가 핵심인데, 밸류업 지수 종목군의 최근 전년 대비 증가율은 코스피200지수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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