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일에 치인다는 핑계로 자기계발을 포기하거나 별다른 비전 없이 자신을 소모하며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성장을 도모한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역량 강화, 커리어 트랙에서의 ‘성장’이 이뤄지는 과정을 굉장히 체계적으로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마치 사교육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강의 프로그램처럼 여기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5년 차 이하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회사가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종종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은 필요하다. 그러나 회사가 각자 다른 업무를 맡은, 다른 개성과 역량을 지닌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성장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쯤에서 막연한 개념일 수 있는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성장이란 ‘생명 생물체의 크기·무게·부피가 증가하는 일’이라고 쓰여 있다. 이를 업무 및 커리어 트랙에서의 성장으로 치환하면 ‘한 개인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업무의 크기와 무게, 전체적인 범위가 증가하는 일’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체계화된 프로그램을 잘 따르는 것만으로 이뤄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고, 이를 동료 선후배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며 문제해결력을 높여갈 때, 때로는 내가 생각하는 성장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일을 하다가도 어떤 깨달음을 얻고 업무영역을 넓힐 때 성장할 수 있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따라,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뭔가를 공부하고 하나씩 게임 미션을 클리어하듯 해 나가야만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취업 경쟁을 뚫고 조직에 입성한 당신의 몸에는 ‘성장 프로그램’이 내재돼 있다. 그 프로그램을 믿고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성취와 성과를 위해 움직이다 보면 성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또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과 제도’가 없다고 해서 암묵지의 전달체계나 비가시적 성장·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회사는 학교와 달리 이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떠먹여 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회사가 나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중요해 보이는 일만 하고 싶다’는 말의 그럴싸한 포장지가 돼서는 안 된다. 요즘 업무 때문에,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들었는가? 보통 우리는 그걸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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