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수장 제거한 이스라엘, 레바논 국경에 병력 집결

입력 2024-09-29 18:16   수정 2024-09-30 00:38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64)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지난 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서 사망했다. 올해 7월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숨진 데 이어 친이란계 거물이 암살되면서 중동 지역 내 전운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헤즈볼라는 28일(현지시간) 나스랄라가 “순교자 동지들과 함께하게 됐다”며 그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하니예에 이어 나스랄라까지 숨지면서 이란을 중심으로 한 무장 동맹인 ‘저항의 축’ 수뇌부는 사실상 궤멸 상태에 놓였다. 하니예 암살 후 보복을 언급하면서도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던 이란은 이번엔 헤즈볼라에 ‘전면 지원’을 선포했다.
이스라엘, 레바논 국경 진출
나스랄라는 베이루트 동쪽 난민촌 시아파 가정에서 태어나 1982년 헤즈볼라에 합류했다. 1992년 헤즈볼라 수장인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 32년 동안 이 조직을 이끌어왔다. 최근 수개월간 헤즈볼라 조직 궤멸에 집중해온 이스라엘은 나스랄라의 오른팔과 왼팔로 꼽히는 푸아드 슈크르 사령관(7월 30일)과 이브라힘 아킬 사령관(9월 20일)을 제거했다. 나스랄라에 대해서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가 근거지를 옮길 수 있다는 첩보를 받고 암살을 결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 카르키 헤즈볼라 남부 사령관 등도 이 공격에서 함께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나스랄라는 ‘악의 축’의 중심이자 핵심 엔진이었다”며 그를 제거한 것이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자평했다. 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 정권에 말한다”며 “누구든 우리를 때리면 우리도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아직 과업이 끝나지 않았다”며 레바논에 남아 있는 헤즈볼라에 군사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지상전에 대비해 레바논과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북부 국경 인근 고속도로에서 병력 이동이 크게 늘었다며 헤즈볼라 공습 수개월 전부터 대부분 비워져 있던 곳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나스랄라가 사망하기 전날 새 탱크가 이 지역에 배치됐고, 장갑차 두 대가 호위하는 크레인이 이동식 대피소를 설치하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WP는 전했다. 지상전이 벌어지면 민간인을 포함한 대규모 피해가 불가피하다.

연이은 암살로 타격을 받고 중동 지역 내 지위가 크게 흔들리게 된 이란이 직접 파병을 결정하면 이 전쟁은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하메네이는 “나스랄라의 피는 복수 없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레바논과 헤즈볼라 지원에 나서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고 밝혔다. 헤즈볼라 수장과 함께 아바스 닐포루샨 이란혁명수비대 작전부사령관이 폭사한 것에 대해 이란 외무장관은 보복을 예고했다. 29일 AFP통신에 따르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성명에서 “침략자 시오니스트(이스라엘) 정권의 끔찍한 범죄는 대응 없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그들을 추적하겠다”고 경고했다.
‘패싱’에 속 끓이는 美
하니예 사망 때도 암살 직전 단순 통보 형태로 미국에 알렸던 이스라엘은 이번엔 아예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외신의 공통된 평가다. 중동 정세를 안정화하고자 가자지구 휴전 협상을 추진해온 미국과 동맹국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일단 “정의의 조치”라며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지만 ‘마이 웨이’를 가는 네타냐후 총리를 향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런 행보는 바이든·해리스 지지율을 떨어뜨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테러 공격과 잔학 행위를 해결해달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방국가는 외교적 해결을 요청하며 확전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이 친이스라엘 태도를 쉽게 바꿀 수 없는 한 국제사회 개입이 요원하다. 제브데트 이을마즈 튀르키예 부통령은 “(나스랄라 암살은) 분명히 역내 갈등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것이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바”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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