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경북 포항 포스코퓨처엠의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지만 중국에 90%를 의존하고 있는 흑연의 ‘탈(脫)중국’이 본격 추진되는 순간이었다. 포스코퓨처엠은 1만3000t 규모의 인조흑연 공장 건설에 4600억원을 들였고, 산업통상자원부도 50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현재 인조흑연 사업은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구매를 주저하고 있어서다. 포스코퓨처엠은 급한 대로 8000t만 인조흑연을 생산해 미국 배터리 제조사 얼티엄셀즈에 납품할 예정이다. 포스코퓨처엠은 2026년까지 인조흑연 생산능력을 3만8000t으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최종 의사결정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이 인조흑연 생산에 나선 것은 전량 중국산에 의존하는 구형 흑연 대신 제철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공 비용에 전기요금 등이 추가되기 때문에 포스코퓨처엠이 만드는 인조흑연 가격은 천연흑연보다도 약 30% 더 비싸다. 국내 배터리 대기업이 중국산 대신 국산 흑연을 써주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가격 차이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불화수소도 실상은 비슷하다.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통제 이후 한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솔브레인 같은 한국 기업은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다. 국내 불화수소 시장을 이제는 국내 기업들이 70%가량 점유하고 있다.
문제는 원재료 공급망이다. 불화수소는 형석을 가공한 무수불산으로 만드는데, 형석과 무수불산 모두 중국이 최대 생산국이다. 국내 무수불산 수요는 연간 7만t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후성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 9000t의 무수불산을 생산해 중국의 시장 독점을 겨우 막고 있다.
반도체 수요 증가로 국내 무수불산 수요는 곧 10만t을 넘길 전망이다. 2030년까지 중국산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려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면 후성은 생산량을 5만t으로 늘려야 한다. 현실은 저가 중국산에 밀려 생산 중단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 품목으로 정한 185개 소재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산 등과의 가격 차가 워낙 크다보니 단기 실적을 따져야 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선뜻 국산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산화, 다변화, 비축 등 공급 안정화에 집중된 핵심 소재 정책의 무게중심을 가격경쟁력 확보 등 수요 부문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비 보조, 세제 지원 확대, 납품대금 결제 연장 지원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세액공제는 공장 가동 후 이익이 발생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는 만큼 곧바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 일본 인도 등도 중국의 노골적인 자원 수출규제와 자국 산업 보호에 맞서 보조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외처럼 보조금 등을 효과적으로 지원한다면 185개 핵심 소재를 안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이슬기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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