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익률 높이겠다면서…국민연금 운용역 50명 이상 부족

입력 2024-10-01 17:14   수정 2024-10-01 17:28



국민의 노후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역이 정원 대비 50명 넘게 모자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서울에서 전주로 이전한 2017년 이후 최대 결원이다. 인력난을 해결하지 않고선 '기금운용수익률 1% 포인트 제고'라는 정부의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기금운용역 수는 362명으로 정원(415명) 대비 53명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기금이 지난 7월 말 기준 1150조원대로 불어나며 '세계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했지만 인력 수급 문제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 근무 기피, 민간 투자업계 대비 낮은 보상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기금운용본부는 전주 이전 이후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 기금운용직 결원(정원-현원) 규모는 전주 이전이 확정된 2015년 15명에서 이전이 완료된 2017년 34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코로나19에 따른 퇴사자 일시 감소, 신규 채용 확대 등으로 결원 숫자(2021년 21명)가 줄었지만 충원 속도가 정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원 인원은 2022년 49명으로 늘었다가 2023년 28명으로 감소한 뒤 올해는 전주 이전 후 가장 많은 결원이 발생했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올해 정원(415명)이 작년보다 50명 급증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지만 정원이 100% 채워진 적은 2012년(118명) 이래 한 번도 없었다.



투자 실무경력이 7년 이상인 책임급 운용역의 퇴사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들은 민간 금융사의 과·차장급에 해당하는 베테랑 인력이다. 지난해 30명의 퇴사자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책임급 운용역이었다. 지난 6월 기준으로는 퇴사자 10명 중 4명이 책임급이었다. '젊은 피'인 전임, 주임도 올해 5명이 짐을 싸 퇴직자(10명)의 절반을 차지했다.

보험료율 인상 효과를 내는 기금운용수익률 제고를 위해선 전문 투자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기금운용수익률을 4.5%에서 5.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보험료율 인상 등의 연금 개혁안이 실행되면 운용역들이 책임져야 할 기금은 지난 7월 말 기준 1100조원에서 2026년 5000조원으로 확대된다. 인력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운용역 한 명이 책임져야 할 기금 규모가 급증하는 것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운용역 1인당 운용 규모는 3조1680억원으로, 국민연금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캐나다 국민연금(CPPI)의 10배가 넘을 만큼 과도한 수준이다.

전문 인력 부족은 시장을 이기지 못하는 수익률 부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역대 최고치인 13.59%의 수익률을 거뒀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한계가 있다. 국내주식은 수익률이 22.14%에 달하지만 코스피 등 벤치마크(기준점) 수익률에 비해선 0.04%포인트 상회하는 데 그쳤다. 해외주식은 24.27%의 수익률을 냈는데 벤치마크 대비로는 0.63%포인트 낮은 수준이었다. 결국 절대 수익률 자체는 좋았어도 시장에 맡겨놓은 것만 못했다는 의미다. 김 의원은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기금이 남아있는 동안 운용수익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기금운용직 충원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많은 투자 인력이 정주 여건이 부실한 지방 근무를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하고 한창 자녀를 키울 때인 30~40대 운용역들 대부분은 기러기 생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교육열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고소득 금융 전문가들이 '커리어 향상'만 보고 전주행을 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0년 경력의 부동산 대체투자 심사역 A씨(38)는 "국민연금 수준의 대형 글로벌 투자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만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연고도 없는 전주에서 기러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며 "요즘은 다른 대형 연기금이나 운용사들도 수준급 투자를 하고 있어 국민연금 지원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기금운용본부를 다시 서울로 옮기려면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정치의 영역'이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지역적 한계를 극복할 만큼의 처우 개선과 해외 현지 인력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2018년 별도의 서울사무소 설치를 권고하기도 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리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보상을 늘리고 해외 위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세민/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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