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초유의 자사주 공개매수…"부메랑 될수도"

입력 2024-10-01 17:53   수정 2024-10-02 01:42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를 꺼내 든 건 고려아연 주가를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가격(75만원) 이상으로 단번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MBK의 공개매수 마감일인 오는 4일 이전에 주가가 주당 75만원을 넘어설 경우 베인캐피탈 등의 자금을 쓰지 않고도 MBK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다만 초유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개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세 조종 소지가, 주가 하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공개매수를 하는 건 배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자사주 매입이라면 굳이 2일에 발표하지 않고 다음주에 발표해도 된다”며 “최 회장 측이 승리하더라도 다시 법정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벼랑 끝 전술 선보인 최윤범 회장
1일 IB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2일 오전 9시 이사회를 열고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안건을 의결한다. 이사회에서 매수 가격과 규모 등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MBK 연합의 공개매수 가격이 주당 7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고려아연이 주당 최소 80만원 이상으로 매수 가격을 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개매수 시기는 7일부터가 유력하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 계획을 미리 공지하고 실제 매입은 공개매수 기간 이후에 진행해 위법 논란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K는 지난달 13일 공개매수를 시작하면서 법원에 고려아연과 그 계열사가 공개매수 기간 자사주를 매입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한 법원 판결은 2일께 나올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매입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할 방침이라고 법원 측에 밝혔다.

만약 최 회장의 의도대로 주가가 80만원 이상을 유지할 경우 MBK 연합의 공개매수는 1차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 입장에선 기회비용이 큰 베인캐피탈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단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MBK 연합이 재차 공개매수에 나서면 한화그룹 등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와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다시 자본 조달에 나설 계획이다.

MBK는 반발하고 있다. 우선 2일 법원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대한 추가 가처분 신청을 할 예정이다. 배임과 시세조종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전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MBK 관계자는 “고려아연 주주 입장에서 소각 목적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가 원래 수준(지난달 12일 종가 55만6000원)으로 돌아간 뒤 발표해도 된다”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수조원의 회삿돈을 쓰는 건 명백한 배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경영권 분쟁 중에 자사주 공개매수가 이뤄진 사례가 없다. 미국에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한해 회사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합법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가 적대적 M&A인지를 두고 공방전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대항 공개매매 발표 시작
최 회장 측은 2일부터 1181억원을 투입해 영풍정밀에 대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기로 했다. 공개매수 가격은 MBK 연합이 제시한 주당 2만5000원보다 5000원(20%) 높은 3만원이다. 공개매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12일 종가(9370원)보다 3배 이상 높다. 공개매수 기간은 2일부터 21일까지 20일이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경영권 분쟁의 ‘키포인트’로 꼽힌다.

영풍·MBK 측에 영풍정밀 경영권을 빼앗기면 최 회장 입장에선 고려아연 의결권을 사실상 3.7% 넘겨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의 영풍정밀 지분은 35.45%에서 60.45%로 늘어난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영풍정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고려아연 측의 최창근 명예회장, 최창규 회장, 유미개발 등은 영풍정밀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지 않은 만큼 주식담보대출 여력도 있다.

김우섭/하지은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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