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톰브라운의 트레이드 마크인 줄무늬를 영영 보지 못할 뻔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용품업체 아디다스가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의 ‘4선’ 줄무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아디다스는 이 4선 줄무늬가 아디다스의 '3선' 줄무늬 디자인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톰브라운 마니아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미국, 독일 등에서 잇따른 소송전에서 톰브라운이 승리하면서다. 업계에서는 “같은 패션업계라 해도 서로 타케팅하는 시장이 다른데 아디다스가 무리하게 소송을 걸었다”는 분석이 많다. 아디다스와 톰브라운은 어쩌다 ‘선’을 두고 소송전을 벌이게 됐을까?
법원은 톰브라운의 줄무늬 디자인이 아디다스의 디자인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고 봤다. 예컨데 톰브라운의 줄무늬는 아디다스 줄무늬보다 크기가 크고 간격도 넓으며 소매에서도 더 많은 부분을 덮고 있다는 것이다.
또 톰브라운은 고급품 시장을, 아디다스는 대중 스포츠웨어 시장을 겨냥하고 있어 이또한 소비자가 두 브랜드를 헷갈리거나 착각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톰브라운 측의 주장을 전격 수용한 것으로, 톰브라운은 양사의 시장이 다르다는 예로 자사의 여성 운동용 압박 타이츠는 가격이 725달러(95만원)지만 아디다스 레깅스는 100달러(13만원) 미만이라는 점을 들기도 했다.
앞서 미국에서도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아디다스 측은 톰 브라운의 4선 줄무늬 디자인이 자사의 3선 디자인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톰 브라운의 손을 들어줬다. 배심원단은 톰 브라운의 4선 줄무늬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3선 줄무늬의 아디다스 제품과 혼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같이 평결했다.
물론 몇몇 법원에서 판결이 났다고 해도 법정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분위기다. 아디다스 측이 항소 의사를 밝힌 데다가, 양사는 영국, 네덜란드, 유럽연합(EU) 지식재산권청 등에서도 상표권을 두고 다투는 중이다.
줄무늬 디자인을 두고 아디다스의 공격을 받은 브랜드는 톰브라운만 있는 게 아니다. 2018년엔 프랑스 패션브랜드인 산드로와 이자벨마랑이 의류 디자인 일부에 줄무늬 디자인을 넣었다가 소송을 당했다. 물론 톰브라운과 유사한 이유로 소송은 기각됐지만, 아디다스는 불복하지 않고 대법원 판결까지 무려 6년간 소송전을 이어왔다. 미국 패션업체 폴로 랄프 로렌 등 두 줄 무늬를 사용하던 업체들과도 여러 차례 법적 분쟁을 벌였다.
2003년엔 두 줄 무늬 상품을 판매하던 독일 업체 ‘피트니스월드’를 상대로 유럽사법재판소(ECJ)에 같은 소송을 냈지만 패했다. 당시 재판부는 "두 줄 무늬는 단순한 장식에 불과하며, 소비자들이 두 회사 제품을 혼동할 우려가 없다"고 했다. 두 줄을 트레이드마크로 사용해온 벨기에의 슈브랜딩유럽도 10년 넘게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물론 아디다스가 승리한 경우도 있다. 2015년 아디다스는 스케쳐스의 운동화 오닉스가 ‘스탠 스미스’ 스니커즈 디자인을 복제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아디다스의 손을 들어줬다. 아디다스가 이 디자인에 특허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스케쳐스에 해당 제품 판매 중지 명령을 내렸다.
실제 아디다스는 2008년 이후 90건 이상 소송을 제기하고 200건 이상의 합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사 고유 상표의 상징성을 지키려 노력해왔다.
이런 소송에 대해 비판적 의견도 나온다. 패션 산업에서 줄무늬 디자인은 장식적 목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줄무늬의 모든 용도가 상표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아디다스의 행보가 줄무늬 사용권에 대한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소비자들이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로 표현했다. “선 그으면 다 네거냐.”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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