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 간파한 메리츠…고려아연에 연 7% 고금리 1조 대출

입력 2024-10-02 15:03   수정 2024-10-02 19:21

이 기사는 10월 02일 15:0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을 위해서 메리츠금융그룹에서 사모사채로 1조원을 긴급 조달한다. 하지만 차입금리가 연 7%로 일반적 시장조달금리보다 4%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300억원가량의 이자비용을 더 내고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그만큼 고려아연 상황이 급박하다는 의미다. 메리츠금융그룹은 2022년 유동성 위기를 겪은 롯데건설에 자금을 대준 것을 비롯해 위기에 몰린 기업에 고금리 자금을 지원해 적잖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조만간 메리츠증권을 통해 사모사채 1조원을 발행한다. 메리츠증권이 1조원을 인수해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에 셀다운(인수 후 재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이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차입금을 조달하는 구조다.

사모사채 만기는 1년 미만으로 금리는 연 7%대로 설정됐다. IB업계는 고려아연 조달금리가 너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고려아연 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평가했다. 이 같은 신용등급을 고려할 때 고려아연의 공모사채 조달금리는 연 3%대 초반으로 예상된다. 공모사채 조달금리보다 4%포인트나 높게 메리츠금융그룹의 사모사채를 조달하는 것이다. 무리한 조달로 연간 400억원의 이자비용을 더 내는 것이다. 고려아연이 이 사모사채에 대한 콜옵션(조기상환권)을 부여받았다는 분석도 내놨다.

고려아연이 이처럼 높은 금리로 조달하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의미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영풍 등이 공개매수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대항하기 위해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려아연은 영풍·MBK파트너스와의 지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2조~3조원가량의 자사주를 매입할 계획을 세웠다. 자사주 매입을 위한 실탄을 긴급하게 조달할 유인도 커졌다.

공모사채는 통상 조달과정에 한 달가량이 걸린다. 주관사를 선정하고,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진행한 뒤 수요예측까지 거쳐야 해서다. 이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내용에 문제 삼을 경우 이를 고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이르면 이번 주에 자사주 매입을 추진할 계획인 고려아연으로서는 시간 여유가 없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기업어음(CP) 4000억원을 조달한 바 있다. 여기에 베인캐피털을 비롯한 재무적 투자자(FI)를 통해 투자금 마련도 나섰다. 이를 통해 자사주 매입 대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고금리 조달에 대한 우려도 높다. IB업계 관계자는 "시장금리보다 너무 높이 발행하면서 회사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법적 분쟁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실탄이 부족하거나 리스크위원회 등을 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다른 증권사들은 고려아연의 비슷한 제안조차 못한 상황이다. 거래가 진행되면 메리츠금융그룹은 넉넉한 이자수익을 누릴 전망이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에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 리스크에 빠진 롯데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렸다. 메리츠증권은 당시 롯데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롯데건설을 지원했다. 롯데건설은 올해 초에도 메리츠금융그룹과 5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차입 약정을 맺기도 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금융그룹이 유동성 위기나 경영권 분쟁을 겪는 업체들에 긴급하게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넉넉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며 "하지만 업체에 너무 높은 금리를 요구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김익환/장현주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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