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만 해변 걷고 싱잉볼 명상…지친 당신, 푸껫 힐링 어떠세요

입력 2024-10-03 19:13   수정 2024-10-04 02:11


사는 일은 언제나 그랬듯 쉽지 않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고 고비마다 필요한 해결책도 매번 달랐다. 지치지 않기 위해,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온전한 ‘휴식’을 떠올렸고 그때 생각난 이름이 반얀트리였다. 반얀트리는 여행에 웰빙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호텔과 리조트 브랜드다. 그리고 온화한 날씨의 태국 푸껫, 아무 생각 없이 마사지나 받고 나른한 동남아시아 날씨에 더 이상 게을러질 수 없을 때까지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떠나 있자.’
명상과 요가, ‘나’에 집중하는 시간
반얀트리 푸껫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가 한참 지난 시간. 전 객실이 단독 빌라로 구성된 반얀트리 푸껫의 밤 시간은 고요했다. 방문을 여니 통창 너머로 4m 길이의 프라이빗 풀과 자쿠지, 선베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단 하나의 풍경만으로도 여행의 설렘과 오롯이 혼자라는 기대에 피곤이 금세 가셨다. 새벽 1시를 향해 가는 시간에 개인 풀에서 수영하고 자쿠지와 선베드를 오가며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모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숙소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웰빙 센터를 찾았다. 싱잉볼 명상 수업을 한다는 교실에는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국적은 제각각,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네팔과 인도 등지에서 공수해온 싱잉볼의 청아한 소리를 들으며 명상 지도자의 지시에 맞춰 호흡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배가 불룩하니 부풀었다가 속에 있던 한숨까지 다 몰아낼 만큼 깊은 숨을 내뱉으며 몸 곳곳으로 퍼지는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손과 발의 끝, 등과 허리, 단전부터 이어진 호흡이 머리에 가 닿기를 반복하며 몸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일상을 떠올렸다. 요가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대퇴근과 상완근이 조여지고 근육의 저릿한 통증을 천천히 느끼는 사이 신경은 저절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낮에는 리조트 내부를 오가는 일종의 카트인 ‘버기’를 타고 방이 여럿 딸린 더블 풀빌라로 이동해 점심 식사를 하고 최근 개장했다는 반얀트리 프라이빗 비치에 나가 일광욕도 즐겼다. 안다만 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 배경의 비치는 한산했고 간혹 말 위에 올라 해변가를 산책하는 이들만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망중한’에 빠져 있는 시간은 그 자체가 힐링이고 웰빙이었다. 스파 센터에서 마사지도 받았다.

다녀온 이들 말로는 근육 속까지 풀어준다는 ‘딥 티슈(deep tissue)’가 최고라고 했지만 굳이 고통을 사서 하고 싶지는 않은 까닭에 부드럽게 근육 이완을 돕는 ‘젠틀 터치(gentle touch)’를 골라 스파 룸으로 들어갔다. 2인까지 들어갈 수 있는 스파 룸에서 일랑일랑과 블랙 페퍼 아로마 중 한 가지를 고르고 마사지 베드에 누워 몸 곳곳에 닿는 손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이 세상없는 편안함에 슬며시 눈이 감겼다. 저녁에는 작은 보트를 타고 나가 석양을 감상했다. 푸껫에서의 모든 시간은 평화로웠다.
반얀트리 30주년, 웰빙 생크추어리의 철학
반얀트리 푸껫은 하루 종일 다녀도 다 둘러보지 못할 만큼 넓었다. 400㏊, 약 121만 평이나 되는 규모의 대지 위에는 골프장과 8개의 레스토랑, 4개의 액티비티 시설, 218개의 풀빌라가 있다고 했다. 자전거를 빌려 재스민 나무와 야자수가 가득한 반얀트리 골목골목을 누비는 사이 넓기만 한 리조트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뷰가 완벽한 조경을 자랑하고 이정표와 가로등, 길가의 반석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빌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18홀 골프클럽도 수준급이었다. 완만한 경사와 넓은 필드, 잘 가꿔진 잔디로 샷을 날릴 때의 손맛이 한국과는 또 달랐다.

반얀트리 푸껫이 문을 연 것이 1994년 9월이니 올해가 꼭 30년 되는 해다.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갈라 디너를 마련했다는 초대장을 받고 행사장에 방문했다. 반얀트리 관계자는 물론 투숙객까지 초대한 성대한 파티였다. 옆에 앉은 인도인 사업가 아닐 샤베르월 씨는 올해가 15번째 반얀트리 푸껫 방문이라고 했다. 뉴델리에서 유럽을 상대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무역업을 하는데 “사업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반얀트리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유를 만끽한다”는 것이다. 반얀트리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세상과의 단절과 여유, 그것을 통해 얻은 자신에 대한 집중 말이다. 야생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피해를 본 동물을 위한 안전 구역을 뜻하는 ‘생크추어리(sanctuary)’ 용어와 결합해 인간을 위한 ‘웰빙 생크추어리’ 개념을 도입한 반얀트리의 비전은 딱 들어맞았다.

어슬렁거리다가 들른 반얀트리 기념품숍은 의외의 발견이었다. 태국과 일본, 중국, 인도 등지 공예가와 협력해 만든 다양한 굿즈 제품은 세련됐고 품질도 좋았다. 플라스틱병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포장용 보자기나 비누, 공예품은 반얀트리 철학을 반영한다는 점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 반얀트리 30년사를 정리해 놓은 책자도 뒤적여봤다.

자연 환경을 고려한 건축물과 웰빙의 가치를 반영하는 리조트 설립 이념은 물론 여행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 만큼 리조트가 들어서는 지역의 경제 부흥과 지속가능성에도 공을 들인다는 30년 철학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얀트리는 그저 값비싼 럭셔리 리조트가 아니었다. 여행을 통한 치유의 가치를 전파하고 여행이 더 나은 지구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수단이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실천 방안을 찾아온 창립자 부부의 고집은 그래서 놀라웠다.

리조트가 들어선 곳의 지역민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해 지역 봉사활동을 하거나 지역 동식물 보호 운동을 벌이는 것 역시 반얀트리 철학의 산물이다. 푸껫에도 리조트를 짓고 난 뒤에 유치원과 학교를 설립해 무료로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지금도 투숙객과 함께 지역 봉사활동을 한다는 걸 알고는 경외심마저 생겼다.

반얀트리 티셔츠를 입고 함께 인근 초등학교 페인트칠 봉사를 나선 날,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빗물처럼 땀을 쏟으면서도 힘이 솟았다. 샤넬 백을 멘 독일 부인도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자연과 이웃을 위하는 큰마음이 결국 밀고 나갈 용기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진리가 새삼 깊게 와 닿았다. 본성의 회복, 반얀트리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푸껫(태국)=이선정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sj_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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