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은행원으로 근무한 이병호 씨(63)는 2016년 퇴직 후 2년6개월간의 수험생활 끝에 지난해 ‘나무 의사’가 됐다.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학창시절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한 끝에 10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이씨는 “은퇴 후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 나무 의사 자격증을 획득했다”며 “직업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병든 나무를 치료하는 나무 의사가 은퇴자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n수생이 넘칠 정도로 어려운 시험임에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데다 수입도 짭짤하다는 소문이 퍼져서다.
3일 한국임업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진흥원이 처음 도입한 나무 의사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은 올해 10회차 시험까지 1557명이다. 이들 나무 의사가 개설한 ‘나무 병원’이 860곳에 달할 정도로 조경업계에서 소위 ‘뜨는’ 직군으로 주목받고 있다.
나무 의사는 수목의 병해충 피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2018년 산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나무 의사가 아닌 개인은 수목을 진료할 수 없게 됐다. 나무 병해충 발생 시 무분별하게 약제를 뿌려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심은 나무가 병에 걸렸을 때나 개인 소유 나무의 병해충 진료가 필요할 때도 전문가인 나무 의사에게 의뢰해야 한다.
조경업계는 10여 년 새 도심에서 녹지의 중요성이 커진 데다 고급 조경을 갖춘 대단지 아파트가 늘면서 수목 치료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무 의사의 인기가 덩달아 치솟는 이유다. 시험 난도는 높다. 임업진흥원 관계자는 “그동안 10차례 자격시험 중 합격률이 가장 낮았을 땐 5.1%에 불과했다”며 “그럼에도 지원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자격증과 달리 자격증 응시자 60%가량이 50대 이상이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지난해 9회차 시험 응시자 2273명 중 50대 이상이 1276명에 달했다. 9회차 시험의 합격률은 10.2%를 기록했다. 오래 다닌 직장에서 퇴직한 중장년들이 정년이 없는 나무 의사를 ‘제2의 직업’으로 삼기 위해 꾸준히 응시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2019년부터 나무 의사로 활동 중인 50대 서모 씨는 “경기도의 한 나무 병원에서 근무하며 전원주택을 주로 담당한다”며 “월 350만원 정도 급여를 받는데, 원한다면 주 3일 근무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무 의사라는 타이틀을 통해 전문가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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