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석 칼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마법 연금'은 없다

입력 2024-10-03 17:51   수정 2024-10-04 09:06

선진국 국민연금은 대개 우리보다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구조다. 일본, 독일, 스웨덴은 보험료율이 18%대에 달하지만 40년 가입자 기준 소득대체율은 40%가 채 안 된다. 경제 상황이나 출산율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줄일 수 있는 자동조절장치를 도입한 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4개국이나 된다. 이렇게 안 하면 연금 재정이 파탄 나기 때문이다.

한국은 딴판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로 설계돼 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문제는 폰지 사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출생·고령화로 보험료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 받을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이 현재 1000조원을 넘지만 이대로 가면 2056년 완전 고갈된다는 정부 계산이 나와 있다. 정부가 2007년 노무현 정부 이후 17년 만에 연금개혁에 나선 이유다.

정부안이 완벽한 건 아니다. 원래 소득대체율 40% 유지에 필요한 보험료율은 19.7%다. 소득대체율을 42%로 높이면 보험료율은 20.7%까지 올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2%, 즉 13-42% 안을 내놨다. 지난 21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 조사 때 더 내고 더 받는 13-50% 안이 더 내고 그대로 받는 12-40% 안보다 높은 지지를 받은 걸 감안한 고육책이다. 13-42% 안은 연금 고갈 시기를 16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온전한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이걸 보완하는 게 자동조정장치다. 지금은 매년 물가 상승률만큼 연금액이 올라간다. 가령 국민연금 예상 수급액이 월 100만원인데 소비자물가가 3% 올랐다면 실제 연금액은 103만원이 된다. 정부가 제안한 자동조정장치는 여기에 가입자 수와 기대여명을 반영한다. 만약 물가 상승률이 3%인데 최근 3년 평균 가입자가 1% 줄고 기대여명이 0.5% 늘었다면 연금액은 1.5%(3%-1%-0.5%) 늘어난 101만5000원으로 낮아진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실제 연금액이 매년 최소 0.31% 이상 늘어나도록 보장한다. 연금의 실질 가치가 깎일 순 있지만 그렇다고 낸 돈보다 적게 돌려받는 일은 없는 것이다. 13-42% 안과 함께 국민연금의 보험료 수입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는 2036년부터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연금 고갈 시기가 2088년으로 미뤄진다는 게 정부 계산이다. 일본 국민연금(후생연금)처럼 100년 뒤에도 끄떡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현행 제도보다 연금 고갈 시기를 32년 더 늦출 수 있는 것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반대만 한다. 13-42% 안은 국회 공론화 결과에 미달하고, 자동조정장치는 연금 삭감을 위한 꼼수이자 시기상조라는 게 반대 이유다. 그러면서 꺼낸 대안이 13-44% 안 또는 13-45% 안인데 이렇게 하면 연금 고갈 시기는 기껏해야 최장 8년 정도 미룰 수 있을 뿐이다. 개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연금개혁에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마법은 없다. 내는 돈을 늘리거나 받는 돈을 줄이거나 아니면 수급 시기를 늦추는 게 불가피하다. 인기 없는 일이지만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책임있는 정부와 정당의 자세다. 이런 고통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은 현세대의 짐을 후세대에 떠넘기거나 결국 연금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알 수 있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몇 가지 개혁안을 만지작거리다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연금개혁을 외면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폭풍을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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