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쌀이 남아도는 나라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정부가 비축(보관)한 쌀 재고 물량은 약 115만t에 달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권고한 한국의 적정 비축 물량인 80만t보다 43% 많다. 소비량은 빠르게 줄어드는데 생산량 감소는 더뎌 국산 쌀도 남아도는 상황에서 수입 물량까지 더해진 결과다.
쌀 시장 개방 유예는 ‘공짜’가 아니었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미루는 대가로 일정 물량을 5%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는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TRQ 물량은 1995년 5만1307t에서 2004년 20만5229t, 2014년 40만8700t으로 계속 늘어났다. 2015년 마침내 쌀 시장이 개방되면서 수입 관세율이 513%로 높게 설정됐지만, TRQ 물량인 40만8700t에는 5% 관세가 그대로 유지됐다.
쌀 수입은 국영무역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미국 중국 등 수출 쿼터(할당)를 가진 국가에서 최저가로 쌀을 사들인 뒤 가장 높은 가격으로 입찰한 국내 업체에 되파는 방식이다. 수입쌀은 즉석밥 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인다. CJ제일제당이 미국에 수출하는 햇반에도 미국산 쌀이 들어간다. 수입쌀은 주정용, 사료용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하지만 밥쌀용으로 판매된 수입쌀은 지난해 기준으로 6000t(1.3%)에 불과했다.
수입쌀도 모두 팔리지 않는다. 판매되지 않은 수입쌀은 국산쌀처럼 비축된다. 지난 8월 기준 수입쌀 비축량은 32만t이다. 국내 전체 비축량의 28%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정부는 국산 쌀과 수입한 쌀을 보관하면서 매년 정부양곡 관리비 명목으로 수천억원을 쓴다. 최근 5년간 양곡관리비는 1조9594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는 내년 정부양곡 관리비 예산으로 올해(4091억원)보다 11.5% 늘어난 4561억원을 책정했다.
쌀 공급과잉 사태는 올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올해는 별다른 풍수해가 없고 일조량도 많아 쌀 풍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쌀 풍년이 들면 재고량이 연말에 140만t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내부에서 “요즘은 풍년이 오더라도 기쁘지 않고 오히려 걱정만 커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농식품부는 올해 밥쌀 재배면적 2만㏊ 수확분을 시장에서 사전에 격리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쌀값이 폭락했을 때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이 개정될 경우 쌀 생산량이 더 늘어 공급과잉 상황이 심화할 것으로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벼 재배면적 감축량을 할당해 쌀 생산량을 줄이는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협조하지 않는 농가엔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쌀 농가가 콩 등 대체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주는 전략작물직불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개방 미룬 대가로 수입쿼터 급증
이런 악순환은 1995년 시작됐다. 한국은 당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농산물 시장을 개방(관세화)했지만 쌀 시장만큼은 유예했다. 국내 농업계 대다수를 차지하는 쌀 농가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쌀은 식량안보를 지킨다는 명분도 가세했다. 쌀 개방은 2004년 한 번 더 유예돼 20년간 미뤄졌다.쌀 시장 개방 유예는 ‘공짜’가 아니었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미루는 대가로 일정 물량을 5%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는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TRQ 물량은 1995년 5만1307t에서 2004년 20만5229t, 2014년 40만8700t으로 계속 늘어났다. 2015년 마침내 쌀 시장이 개방되면서 수입 관세율이 513%로 높게 설정됐지만, TRQ 물량인 40만8700t에는 5% 관세가 그대로 유지됐다.
쌀 수입은 국영무역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미국 중국 등 수출 쿼터(할당)를 가진 국가에서 최저가로 쌀을 사들인 뒤 가장 높은 가격으로 입찰한 국내 업체에 되파는 방식이다. 수입쌀은 즉석밥 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인다. CJ제일제당이 미국에 수출하는 햇반에도 미국산 쌀이 들어간다. 수입쌀은 주정용, 사료용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하지만 밥쌀용으로 판매된 수입쌀은 지난해 기준으로 6000t(1.3%)에 불과했다.
수입쌀도 모두 팔리지 않는다. 판매되지 않은 수입쌀은 국산쌀처럼 비축된다. 지난 8월 기준 수입쌀 비축량은 32만t이다. 국내 전체 비축량의 28%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정부는 국산 쌀과 수입한 쌀을 보관하면서 매년 정부양곡 관리비 명목으로 수천억원을 쓴다. 최근 5년간 양곡관리비는 1조9594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는 내년 정부양곡 관리비 예산으로 올해(4091억원)보다 11.5% 늘어난 4561억원을 책정했다.
○올해도 ‘원치 않는 풍년’ 들 듯
이런 상황을 놓고 농업계에서도 “농가 눈치를 보면서 개방을 미루다 쌀 시장을 망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방을 앞당겨 TRQ를 최소화했어야 국내 쌀 공급과잉이 해소되고 쌀 시장 왜곡도 줄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정황근 전 농식품부 장관이 작년 5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2004년 쌀 시장 개방을 미룰 때 누군가 목숨 걸고 막았어야 했다”고 말한 이유다.쌀 공급과잉 사태는 올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올해는 별다른 풍수해가 없고 일조량도 많아 쌀 풍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쌀 풍년이 들면 재고량이 연말에 140만t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내부에서 “요즘은 풍년이 오더라도 기쁘지 않고 오히려 걱정만 커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농식품부는 올해 밥쌀 재배면적 2만㏊ 수확분을 시장에서 사전에 격리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쌀값이 폭락했을 때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이 개정될 경우 쌀 생산량이 더 늘어 공급과잉 상황이 심화할 것으로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벼 재배면적 감축량을 할당해 쌀 생산량을 줄이는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협조하지 않는 농가엔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쌀 농가가 콩 등 대체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주는 전략작물직불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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