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RA 일임시장 판도 바뀐다"…證, 핀테크와 '합종연횡'

입력 2024-10-05 21:34  


증권사들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RA)' 기반 퇴직연금 투자 일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그동안 퇴직연금 자산 운용에 어려움을 겪던 투자자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 핀테크 RA 업체들과의 협력에도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다만 현재 허용된 퇴직연금 자산의 투자 일임 규모가 크지 않아 RA 업체들은 당분간 적자 사업을 면치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에 향후 투자 일임 운용 수익률이 시장 활성화와 추가 규제 완화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RA를 활용한 퇴직연금 일임형 혁신금융서비스 사업자 신청을 지난달 27일 마감했다. 금융위는 최대 120일간의 심사를 거쳐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현재는 RA 기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자문형 서비스만 가능하다. 일임형 서비스 심사가 통과되면 퇴직연금 제도 중 개인형퇴직연금(IRP)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회사가 고객의 투자 성향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매매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기 위해 자산운용사·RA 업체와 적극 협의에 나서고 있다. 현재 혁신금융서비스 심사 문턱을 넘은 RA 업체로는 디셈버앤컴퍼니(서비스명 핀트) 업라이즈투자자문(든든) 콴텍투자일임(콴텍) 쿼터백자산운용(쿼터백) 파운트투자자문(파운트) 등 6개사다.

미래에셋증권은 리스크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회사 자체 알고리즘 기반의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알고리즘은 미래에셋증권이 2018년부터 6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디셈버앤컴퍼니의 알고리즘이 적용된 포트폴리오를 함께 구성할 예정이다. 삼성증권도 회사의 자체 개발 알고리즘을 토대로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RA 업체의 포트폴리오를 제공할지 여부는 논의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투자신탁운용과 더불어 디셈버앤컴퍼니·업라이즈·콴텍 등 RA 업체 3곳의 포트폴리오를 함께 구성한다. KB증권도 KB자산운용과 디셈버컴퍼니의 알고리즘이 적용된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콴텍에 9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단행한 만큼, 이 회사의 알고리즘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NH투자증권은 직접 일임 사업자로 나서면서 (RA 업체로부터) 자문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받을 건지, RA 업체에 일임을 맡길 건지 비즈니스 구조를 그리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서도 금융사에 계열사의 포트폴리오만으로 구성하지 말도록 지침을 전달한 만큼, RA 업체와의 협력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관건은 운용 수익률이 될 전망이다. 일임은 고객이 자문뿐 아니라 매매 주문까지 금융사에 맡긴 것으로, 운용 보고서를 통해 바로 평가받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허용된 투자 일임 자산 규모가 작다는 점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허용된 IRP 투자 일임 자산 규모는 연 1800만원이다. 규제 샌드박스의 기간 연장을 포함해 4년간 1계좌당 최대 7200만원의 투자 일임이 가능한 셈이다. 다만 RA 업체들로써는 적자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결국 시장 활성화와 규제 완화를 위해서라도 운용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넘어설 뿐 아니라 연금 자산의 안정성까지도 담보되는 성적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 RA 업체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가 진행되는 4년 동안 IRP 한 계좌에 유입되는 최대 금액이 7200만원"이라며 "그동안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시스템을 개발한 비용을 감안하면 적자 비즈니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의 수익을 보고 들어왔다기보다 서비스 사업 범위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을 봤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개인이 퇴직연금 자산을 방치하고 있는 것보다 RA로 투자 일임했을 때 수익률이 개선되고, 효율적이란 결론이 나오면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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