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자로 인한 경찰력 낭비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서울 시내에 주취자 전용 보호시설이 마련된다. 집 주소를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취객을 밤새 한곳에 모아 보호했다가 술이 깬 뒤 스스로 귀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만 일각에선 ‘주취자 뒤처리’에도 세금과 인력을 써야 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는 ‘서울시 주취자 보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조만간 공표한 후 시행할 예정이다. 이 조례는 지난달 시의회를 통과해 조례·규칙심의회에 올라 있다.
서울시장이 서울경찰청, 의료기관과 협의해 주취자를 최대 24시간 동안 보호하는 별도 시설을 설치하는 게 조례의 골자다. 권역별로 시내에 보호시설 두세 곳을 두고, 응급구조사 등 상주 의료 인력이 주취자의 상태를 확인하도록 했다.
서울시와 경찰은 전용 보호소가 경찰력의 효율적 이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안을 담당해야 할 일선 파출소 현장 인력이 경찰차로 주취자를 주거지까지 옮기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경찰은 그동안 주취자 처리에 몸살을 앓아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취자로 인한 출동 건수는 전국적으로 95만8602건에 달했다. 한 파출소 경찰은 “주취자는 우발적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며 “출동하면 현장에서 집 주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사람을 보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경찰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이의 지문을 스캔해 주소를 알아내고 이들을 경찰차로 이동시키는데, 주소지와 실제 거주하는 집이 다른 경우도 많아 상당한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주취자를 한꺼번에 보호할 곳이 생기면 가뜩이나 부족한 출동·순찰 인력의 소요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찰이 많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주취자에 대한 정부의 관리 체계가 전반적으로 미흡한 건 사실”이라며 “시민의 건강권 차원에서라도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주취자 처리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주취자 보호를 위해 새로 사람을 고용하고, 만취자의 숙박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부정적 목소리도 있다. 조례는 5년간 주취자 보호시설 임차료와 환자용 침대 구매비 등으로 이용할 시 예산으로 17억4930만원을 추계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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