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보기술(IT) 기업 관계자는 7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부터 시작된 22대 국회의 첫 국감에서도 기업인 ‘벌세우기’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의원실이 기업에 무리한 질의 답변을 요구하는 사례도 잦다. 답변 제출 기한을 물리적으로 절대 맞출 수 없는 스케줄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한 대관 담당자는 기자에게 “기업들이 정부 조직보다는 훨씬 만만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며 “질의서를 20~30번 정도 수정해서 보고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국감을 빙자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례도 최근까지 있었다. 지난해 국감을 앞두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한 보좌진은 의원회관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는 후문이다. 통신사들을 향해 “요즘 나온 모휴대폰이 좋더라” “요즘 내 휴대폰의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다” 등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기업 관계자들은 “(국감 증인, 참고인으로) 일단 높은 직급을 부르고 보는 국회 관행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국회의원 입장에선 국감에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회장을 먼저 불러야 그보다 낮은 직책이라도 나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CEO 등의 국감 증인 채택을 빼주는 조건으로 각종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도 있다. 한 외국계 기업의 대관 담당자는 “증인 문제로 의원실을 방문하면 지역구는 물론, 의원이나 보좌진의 개인 민원까지 먼저 제시하는 일이 많다”며 “밥을 사는 등의 ‘적당한 협조’가 끝나야 증인 채택 관련 기업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날부터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22대 국감의 대상 기관은 지난해보다 9곳 늘어난 총 802곳이다. 특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증인 108명과 참고인 54명 등 총 162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증인·참고인을 채택했다. 국감 기간 때마다 거론되는 삼성전자도 올해 어김없이 소환됐다.
국감장에 필요한 인사를 불러 국민의 관심사를 묻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에 부여된 책무다. 국정 운영 실태 전반을 점검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다만 ‘높은 직급의 기업인을 무작정 부르고 본다’는 관성이 지속되면 ‘기업 괴롭히기’에 머물 뿐이다. 여기에 고압적인 의원실의 태도까지 더해진다면 기업인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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