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7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원전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필리핀에서도 ‘팀 코리아’가 최고의 원전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고, 마르코스 대통령은 “원전과 관련해 한국과 적극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쌓은 양국 간 신뢰로 한국 정부가 향후 필리핀 원전 수주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바탄 원전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1986년 준공 이후 한 번도 가동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2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이 전력난 해소를 위해 원전 도입을 추진하면서 바탄 원전 재개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간 두 정상은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바탄 원전 재개를 위한 협의를 지속해왔다. 이후 실무 회의를 거친 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MOU를 맺게 됐다.
박춘섭 경제수석은 브리핑에서 “바탄 원전은 우리나라 고리 2호기와 동일한 노형이고 한수원은 고리 2호기를 40여 년간 운영해온 경험이 있다”며 “한수원은 바탄 원전의 타당성 조사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역량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정부는 타당성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바탄 원전 재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 기간은 6개월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과 체코 바라카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사례를 거론하며 “필리핀과 최적의 원전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은 한국이 추진 중인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지도 표명했다. CFE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 수소에너지 등 무탄소에너지를 폭넓게 사용하자는 취지의 이니셔티브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필리핀 언론 필리핀스타와의 인터뷰에서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무역과 투자가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젊고 활기찬 인구 구조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필리핀과 제조·첨단산업 분야에서 높은 역량을 갖춘 한국 간 협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한·필리핀 FTA를 체결했고, 지난달 정부는 국회에 ‘한·필리핀 FTA 비준 동의안’을 제출했다.
이날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포럼에는 두 정상과 양국 기업인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김동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필리핀은 한국의 ‘인태전략’과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핵심 파트너”라며 “필리핀과의 전략적 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닐라=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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