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암 진단,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수준…AI가 새로운 눈 될 것"

입력 2024-10-07 18:27   수정 2024-10-08 01:39

마이크로소프트(MS)는 글로벌 빅테크 중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수조원을 투자한 곳도 MS다. 그런 MS가 집중하는 분야는 인간 신체에 대한 ‘디지털트윈’이다. 유전자 정보, 수술 이력, 의사의 진료 기록 등 수많은 생체·의료 데이터로 가득한 ‘또 하나의 나’를 상상하면 된다. 이를 위해 MS는 세계 200여 개 기업 및 연구소와 협업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미국 시애틀 MS 본사에서 만난 호이펑 푼 MS 미래헬스 총괄매니저는 “생성형 AI가 암 등 난치병 치료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맞춤형 암 치료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MS ‘인공지능 야심’의 끝판왕
“당신은 폐암 3기군요. 세부 유전자 분석 결과 키트루다를 이용한 면역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타세바로 표적치료를 병행해 특정 유전자 변이를 억제하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치료 후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린파자를 맞으세요.”

MS가 꿈꾸는 맞춤형 암 치료 시대의 모습이다. 환자의 모든 정보를 통합한 디지털트윈을 기반으로 환자에게 최적 치료법을 추천해 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항암제 키트루다는 놀라운 효능으로 암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만 암 환자 100만 명 이상이 키트루다로 치료받았다. 하지만 전체 환자 중 키트루다 약물에 반응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다. 암 환자 열 명 중 세 명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푼 매니저는 “현대의학에서 암을 진단하는 과정은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며 “같은 의사라도 병리과 전문의와 임상의가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AI로 각기 얻은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면 고해상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확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환자 맞춤형 진단법을 제시하는 정밀의료는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해 돌연변이를 찾거나,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등 병리학 이미지를 기반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생성형 AI의 멀티모달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마치 인간이 사물의 양상을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처럼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서로 다른 형식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환자의 모든 정보를 모아 암 등 질환에 대한 명확한 단서를 얻는 디지털트윈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멀티플랫폼’ 전략으로 데이터 수집
MS는 의료 디지털트윈을 구현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멀티플랫폼 전략을 펴고 있다. 예컨대 패브릭이라는 플랫폼에 의료 데이터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도구 기능을 넣어 세계 의사들이 이를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엔 원격의료 분야 선두 기업인 텔라닥과 기술 제휴를 하고, 임상 데이터 수집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올 2월엔 스페인 제약사 알미랄과 AI를 기반으로 피부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월 MS가 공개한 ‘프로브-기가패스’는 대표 성과 중 하나다. 28개 암센터가 환자 3만 명에게서 수집한 병리학 데이터 17만 개를 기반으로 암을 진단하는 AI 플랫폼이다. 미국 비영리 의료기관 프로비던스, 워싱턴대와 협력했다.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 플랫폼은 암 분류 등 26개 평가 테스트 중 25개 항목에서 최첨단 성능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푼 매니저는 “종양 깊은 곳에 있는 면역세포 등 인간 의사가 읽기 어려운 세부 신호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시애틀=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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