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배 나왔는지 확인하라니"…고용부의 '황당 요구'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4-10-13 07:22   수정 2024-10-13 07:55


"회사에 조사 나온 근로감독관이 임신한 여성 직원의 '체형 변화'를 파악해서 연장근로를 시키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황당했습니다."

한 유통 대기업의 인사담당자 A씨는 최근 회사에 조사를 나온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소명 요구를 받았다. 임신 중 근로자에게 연장근로를 시켰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임신 근로자에 대해 시간 외 근로, 즉 연장근로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 A씨는 "해당 직원이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아 몰랐고, 밝힌 후엔 법에 따라 연장근로를 시키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감독관들은 "임신 근로자의 '체형의 변화'를 파악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문건에도 버젓이 "체형의 변화 통해 파악"
근로기준법은 임산부, 즉 임신 중인 여성뿐만 아니라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에 대해 여러가지 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 71조 4항에 따르면 임신 중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사용자는 시간외근로, 즉 연장근로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야간, 휴일근로도 시켜선 안 된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맞을 수 있는 중대한 규정이다.

임신 근로자가 임신 사실을 회사에 통보하면 당연히 사업주는 임산부에게 연장근로를 시키지 말아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문제는 근로자가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경우다.

고용부의 지침에 따르면 근로자의 통보가 없어도 회사 측이 '정황', 즉 건강 진단, 고충 처리 접수 등을 통해 임신을 알게 된다면 연장근로를 시키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임신 후 '체형의 변화'를 인지해서 보호 조치해야 한다는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이다.

특히 임신 초기 근로자들이 해당 사실을 숨기면 파악할 방법이 없다. A씨는 "우리 회사는 주52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연장근로 수당이 쏠쏠한 편"이라며 "몇몇 직원들이 이 때문에 임신 사실을 최대한 뒤늦게 알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색출'해내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결과'만 보는 감독관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류상으로 여성 직원이 출산한 시점만 보고, 해당 근로자의 출산 전 연장근로 기록을 대조해 "임신 중인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았다"고 꼬집는 것이다.

A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여직원 체형 변화를 지켜보고 물어볼 수 있겠나"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은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임신할 경우 주어지는 여러 혜택을 상시 공지해야 한다"며 "체형의 변화를 통해 임신 사실을 인식한다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신 직원 연장근로 "시켜도, 안시켜도 문제"...해결책은 기업에 '전가'
A씨 등 인사담당자들을 속 썩이는 또 다른 분쟁은 '고정OT(Oertime, 고정시간외근로 수당)'다. 고정 OT는 시간외 근로수당을 정액으로 지급하는 임금체계다. 업무특성 등을 고려할 때 실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 많이 쓰인다. 고정OT가 많은 곳은 월급의 20~3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엄연한 '연장근로 수당'인만큼, 고정OT를 받기 위해서는 1분이라도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문제는 임신 근로자의 경우 연장근로가 1분도 허용되지 않다 보니 고정OT를 줄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고용부는 질의회시를 통해 "임신 근로자는 시간 외 근로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고정OT를 임신 근로자에게 지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여성고용정책과-3721)고 해석하고 있다. 연장근로가 없었으므로 지급하지 않아도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출산 장려 시대에 역행한다'는 여론이나 내부 직원들의 강력한 반발은 피할 수 없다. '임신 근로자를 차별한다'는 외부의 손가락질도 뼈 아플 수밖에 없다. 더 아픈 건 정작 '보호 대상'이라는 임신 근로자들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임신 근로자를 보호하는 규제가 되레 임신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일부 기업은 일부러 '근거를 만들어' 별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 뒤따라오는 '역차별' 논란은 덤이다. 한 여성 근로자는 "경력 단절이 싫은 것도 있고, 소득 유지가 필요해 임신 중에도 회사를 다니는 것"이라며 "수개월간 임금 소득이 줄어든다면 정부가 육아휴직 수당을 올려주거나 각종 혜택을 주는 정책을 백날 펼쳐도 소용이 없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노사관계 전문가도 "과거 시대에는 올바른 규제일 수도 있지만, 지금 임신 근로자 보호 조항은 임신 근로자들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은 방치하고 결국 책임과 해결 방안은 개별 기업에 떠넘기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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