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위로해 준 일이 처음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친구가 사줘 그날 처음 먹은 술이었는데도 취하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처음 보는 일이어서 많이 놀라셨다. “교복 입은 학생이 술 처먹고 다니냐? 아버지 아시면 어떡하려고 그러냐”며 타박하면서 끌다시피 아버지 방에 꿇어 앉혔다. 내가 쓴 글을 선배가 난도질해 화나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구겨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원고를 펴서 드리자 원문과 교정본을 읽은 아버지는 화가 난 이유를 묻지 않고 “화낼 만하구나”라고만 했다.
며칠 지나 저녁 먹을 때 아버지는 “글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써야 한다”며 “그만한 고민도 없이 쓴 글은 쓰지 않는 것만 못 하다”고 핀잔을 줬다. 지난번 보여드린 원고를 아버지가 내줬다. 얼른 넘겨 봐도 붉은 글씨로 거의 모두 고쳐져 있었다. 살아남은 검은 글씨는 몇 자 되지도 않았다. 붉은 종이에 까만 점을 찍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짧고 긴 공문과 개인 글을 평생 쓴 경험을 바탕으로 글에 관한 독자의 태도를 세 가지로 평가했다. 첫째는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다. 3분의 1쯤 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읽기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네가 쓴 글이라고 해도 읽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두 번째, 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네 글이라고 해서 읽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 사람만이 공감할 뿐이다. 그것도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아예 없거나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네 선배처럼 글을 고쳐주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3분의 1쯤 되는 이들이 그나마 네 글과 재주를 아껴준다.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이다”라며 든 고사성어가 ‘문인상경(文人相輕)’이다. 문인들은 서로 경멸한다는 말이다. 문필가는 자기 문장을 과신한 나머지 동료들의 글솜씨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중국 양(梁)나라 때 엮은 《문선(文選)》에 실린 《전론(典論)》에 나온다. 조비(曺丕)가 한나라의 대문장가 부의(傅毅)와 반고(班固) 두 사람의 문장 실력에 관해 쓴 글에서 유래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야말로 제일인자라고 자부해 글 쓰는 사람끼리는 서로 상대를 경멸한다고 하는데[文人相輕], 이러한 풍조는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찍이 반고와 부의 때부터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실력이 백중하지만, 반고는 부의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며 아우 반초(班超)에게 ‘부의의 경우를 보면, 쓰는 것은 그저 그렇지만 중요한 인격 쪽은 아직 멀었으니 정말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써 보냈다.”
반고는 후한의 역사가로서 그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아 《한서(漢書)》를 지은 사람이고, 부의는 반고와 같은 무렵의 학자로 문장이 좋아 황제의 명으로 여러 서적을 비교·검토·정정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문장가가 자기 문장을 내세우고 다른 동료의 문장을 깎아내리는 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라며 “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확인한 진실만이 그들의 경멸을 이겨낼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요소로 “글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방법으로 내가 쓴 글에 없는 점 세 가지를 함께 지적했다. “글쓰기 전에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글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며 내 글에는 그게 없다고 했다. 두 번째는 “글을 쓸 때는 불필요한 수식어나 복잡한 어휘는 피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며 그 또한 내 글에는 없다고 했다. 특히 “한 문장에 여러 가지 생각을 담지 말고,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생각만을 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글 쓰고 난 뒤 여러 번 검토하고 수정해야 하는 데 내 글에는 그마저 없다고 지적했다. 내 글을 “모두 남의 이야기다. 네 얘기가 없다. 그것도 모두 현란한 수식어만 연결해놓아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이건 글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진실한 글이 읽힌다. 네 얘기를 말하듯 글에 담아내라”고 주문했다. 아버지는 상에 놓인 백김치를 가리키며 “고춧가루나 참기름만 잔뜩 발라놓은 김치 같은 글을 쓰지 말라. 양념은 우려낼 뿐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글을 깨우쳐 가는 손주들을 보며 문득 아버지가 강조한 간단한 글쓰기 원칙이 올바르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고 습관이겠다 싶다. 앞으로 숱하게 부딪칠 짧고 긴 글이 빨간색으로 온통 칠해져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지 않게 말이다. 진실성이야말로 글이 담아야 하는 최고의 속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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