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통 대신 영광' 된 통증의 역사

입력 2024-10-08 18:09   수정 2024-10-09 00:13

의사들에게 전통적인 개원 인기과로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 꼽힌다. 요즘은 여기에 ‘마취통증의학과’가 추가되는 분위기다. 통증 클리닉으로 찾는 환자가 크게 늘어서다.

지금은 통증 완화가 당연한 의료기술이 됐지만, 과거에는 수술 한 번 하려고 하면 환자들이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19세기 초 수술실은 고문실과 같았다. 아편과 술이 필수품이었고 환자의 귀 옆에선 통증을 잊게 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소음이 일었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환자들에게 수술을 가했다. 수술에서 스피드(속도)는 필수조건이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괴짜 작곡가 에릭 사티가 작곡 악보에 ‘치통을 앓는 나이팅게일처럼’이란 악상 기호를 사용했을 만큼 통증 완화는 오래된 인류의 숙원이었다.

마취 기술 발명의 시작이 된 사건이 있다. 1844년 12월 미국 하트퍼드 주민들은 의과대학생이던 가드너 콜튼의 ‘웃음 가스 오락회’에 초대됐다. 콜튼은 웃음가스 또는 아산화질소(N2O)를 의대 시절 경험했고, 이 가스로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모임에 참석한 29세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는 가스를 마신 사람이 넘어지고 의자에 다리를 부딪쳐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그는 이 가스를 이용해 통증 없이 발치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다음날 웰스는 본인에게 아산화질소를 주입한 뒤 조수에게 자신의 사랑니를 뽑게 했다.

발치 후 그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시도가 의학적 마취의 성공적인 첫 번째 시도라고 선언했다. 그는 아산화질소를 치과 치료에 접목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고 본인이 무통 치과 치료의 창시자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그와 잠깐 동업했던 윌리엄 모튼은 에테르 흡입요법을 추가해 더 완벽하게 통증 없는 발치에 성공한다. 모튼의 다음 행동은 존 콜린스 워런 하버드대 외과 교수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워런은 모튼의 마취 공개시연 제안을 받아들였다. 계단식 강당은 병원 직원과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환자는 왼쪽 턱 모서리에 혈관 종양이 있는 ‘소모병’ 환자였다. 무통 수술은 25분 동안 지속됐고, 수술을 마친 뒤 워런 교수는 외과 의사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청중에게 알렸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죽도록 고생한 사람과 그 열매를 얻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아이러니를 종종 보게 된다. 무통 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한 웰스의 기념 비석에는 ‘고통은 없을 것이고, 나는 영광에 깨어날 것이다(There shall be no pain and I awaken to Glory)’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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