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은 인공지능(AI)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 기여한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에게 돌아갔다. 전날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도 AI 연구자가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AI가 과학계의 ‘거대한 물결’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들을 2024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9일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베이커는 단백질 설계를 위한 컴퓨터 계산법을, 허사비스와 점퍼는 ‘알파폴드’라는 AI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해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AI 설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단백질 구조 예측을 위한 알고리즘인 ‘로제타’의 개발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나아가 새로운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이를 통해 질병 치료에 필요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베이커 교수의 제자다.
백 교수는 알파폴드를 개량한 ‘로제타 폴드 디퓨전’이라는 단백질 분자 설계 및 예측 기법을 새로 개발했다. 로제타가 전통적인 물리학적 계산을 통해 분자 구조를 설계했다면 로제타 폴드 디퓨전은 로제타의 성능을 AI로 대폭 끌어올렸다고 보면 된다.
허사비스 CEO와 점퍼 연구원은 컴퓨팅과 AI를 통해 단백질의 비밀을 밝혀냈다. AI를 활용해 인류가 그동안 발견한 거의 모든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단백질은 보통 20가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다. 이 아미노산은 거의 무한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구부러지거나 접히고, 때로는 굉장히 난해한 3차원 구조가 되기도 한다. 이런 구조에 따라 단백질의 성질이 결정된다. 어떤 단백질은 근육이 되고, 깃털이 되고, 뿔이 된다. 또 다른 단백질은 호르몬이나 항체가 된다. 세포와 주변 환경 사이 통신 채널 역할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단백질의 마법’이라고 부른다.
허사비스와 점퍼는 화학자들이 50년 이상 고민해온 이 마법을 풀기 위해 AI를 활용했다. 아미노산 서열에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2 모델을 2020년 개발했다. 이를 통해 2억여 개의 단백질 3차원 구조를 밝혀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연구실에서 실제 장비로 실험하지 않고도 단백질 구조를 알아낼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허사비스는 국내에서도 친숙한 알파고의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2016년 알파고는 바둑 세계 챔피언 이세돌을 이겨 AI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AI가 복잡한 전략 게임에서 인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중요한 이정표였다. 의료 AI 분야 혁신도 그의 업적이다. 허사비스는 AI를 활용한 의료 진단 시스템 개발에 힘쓰고 있다. 딥마인드는 안과 질환 진단, 유전자 분석 등 다양한 의료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점퍼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 역시 알파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AI의 안전성과 윤리에 대한 연구에도 관심이 많아 AI 기술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는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노벨 화학상도 AI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했다. 글로벌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AI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발표된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ANN)을 개발해 딥러닝과 GPT4 등 생성형 AI가 등장하게 한 AI 선구자인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강경주/이해성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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