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 경제는 대규모의 쌍둥이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레이건 정부(1981~89년) 시절 추진한 감세 정책과 국방비 예산 증가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오히려 더 늘었고 1970년대부터 미국 경제를 괴롭히던 무역적자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주식가격을 끌어내린 뒤 경영권을 되팔거나 분해하는 기업사냥꾼이 등장했다. 때로는 우량기업이 타깃이 되어 근로자들이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는 사례가 생겼지만 실적이 부실한 기업을 인수해 조직을 슬림화한 후 다시 수익을 내는 회사로 변신시킴으로써 생산성 높은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높은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업, 정부, 금융이 효율적으로 협력하면서 미국 경제를 위협했다. 자고 나면 일본 금융권이 미국 기업을 인수했다는 기사가 넘쳐났다. 미국 베벌리힐스 로데오거리가 일본의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일본 경제가 미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일본이 세계경제의 리더가 되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적 번영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흔들렸다. 엔고 시대를 넘고자 금융 및 재정 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늘어난 유동성이 투기 자본으로 흘러들어 부동산, 주식 등을 들썩이게 했고 결국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를 초래했다. 자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시작되는 초장기 복합불황 속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반면에 1990년대 미국 경제는 한계생산물이 체감한다는 경제이론에 도전장을 내기에 이르렀다. 냉전체제의 종식과 인터넷 및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되었고,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긴축 기조를 유지한 결과 안정적인 물가와 낮은 실업률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했다.
한물간 실패한 경제 패러다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미국 경제가 1990년대 장기 호황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또는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이라고 불리던 구조조정 때문이다. 부실한 기업과 금융회사를 신속하게 정리하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가시키도록 조직을 재편하는 구조개혁 작업을 꾸준히 실행한 결과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해 산업 경쟁력이 상승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월 30일에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지속가능경제를 위한 구조개혁’이라는 주제로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였다. 한국 경제는 총체적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재성장률에 대한 노동과 자본 그리고 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모두 하락함에 따라 잠재성장률도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있다. 2000년대 평균 6.1%였던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 0.5%까지 추락했다. 성장 잠재력 회복을 위한 변화가 없다면 2040년대에는 역성장 국면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앞으로 경제 이슈를 정치화해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구조개혁의 불확실성이 가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구 위기에 따른 소비, 투자 저하와 재정 여력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기술경쟁력 향상과 혁신의 가치를 가로막는 것은 철폐해야 한다. 부실기업은 상시 구조조정이 가능해야 한다. 잃어버린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개혁 정책의 정교함과 설득이 필요하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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