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자리값과 작품 운송료, 출장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미술시장이 불황일 때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갤러리들은 늘 이런 고민을 한다. 작품 판매가 저조하면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참가 비용 대부분을 허공에 날리는 일이 다반사라서다. 하지만 지난 9일 영국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열린 프리즈 런던에서 만난 갤러리스트들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있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경기가 최악이던 작년에 비해 판매 실적과 분위기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
2021~2022년 호황이던 세계 미술시장은 2023년 꺾이기 시작해 올해 상반기까지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미술시장 분석의 권위자로 꼽히는 분석가 마이클 모제스와 지안핑 메이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봄 경매시장은 지난 수십 년간 본 적 없는 최악의 불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예전에 구입한 작품을 올봄 경매에 내놓은 사람 대부분이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올해 프리즈 런던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시장이 미국에 이어 중국과 2위를 다투는 초거대 미술시장이고, 프리즈 런던은 하반기와 내년 미술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척도라서다. 행사에서 반등의 기미가 보인다면 기나긴 불황의 터널도 곧 끝난다는 뜻이 된다.
현장에서 느낀 ‘체감 열기’는 호황 때와 비슷했다. 프리즈가 초청한 VIP로 입장객을 제한했는데도 공원 앞에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수십억원대 판매 기록도 곳곳에서 나왔다. 미국 뉴욕의 갤러리 하우저앤워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 에두아르 마네 그림을 약 66억원에, 런던 갤러리인 아르케우스·포스트모던은 쿠사마 야요이의 ‘인피니트 네츠’ 그림을 약 22억원에 판매했다. 다만 수백억원대 작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수년 전 호황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날 열린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루시안 프로이트의 그림이 208억원에 팔린 것도 호재다. 가을 경매 기간 크리스티 런던은 약 144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약 829억원) 대비 83% 증가했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미술시장이 바닥을 다지고 이제 곧 올라간다는 ‘반등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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