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크는 주사' 묻지마 처방…아이 병만 키운다

입력 2024-10-10 17:42   수정 2024-10-17 17:01

‘키 크는 주사’로 불리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부작용을 겪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성장기 자녀의 키 문제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질병 수준이 아님에도 주사제 처방을 받는 사례가 크게 늘어서다. 전문가들은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장기 오남용하면 신체 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적절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등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게 성장기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평균 키 넘어도 “주사부터 맞히자”
10일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제 관련 부작용 건수는 1626건으로 4년 전인 2019년의 436건 대비 3.7배 급증했다.

이 중 영구 장애나 사망까지 이른 중대 부작용 건수도 지난해 113건에 달했다. 성장호르몬 오남용에 따른 대표적 부작용은 통증과 실신, 발작 등 신경계 장애와 말단비대증, 척추 측만증 등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부작용 건수가 증가하는 건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맞는 표본 자체가 늘어난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소아(2~12세) 성장 약품 처방 건수는 24만7541건으로 전년의 19만1건 대비 30.2% 증가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2만4997건이 처방돼 지난해의 절반을 넘겼다.

학부모들은 자녀 신장이 조기 교육만큼이나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인 김모씨(45)는 “5학년 남학생 아이가 또래 평균보다 큰 145㎝인데, 이미 같은 반에 10㎝가 더 큰 아이도 많다”며 “나중에 키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질까 봐 호르몬 주사를 맞혔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엔 김씨 자녀처럼 발육 부진 등의 성장 관련 질병이 아님에도 호르몬 치료를 원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처방된 성장호르몬 치료제(40만 건) 중 약 97%는 질병 치료가 아닌, ‘비급여 처방’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외래 진료를 온 아이를 보면 정상 키에 속하는데도 ‘180㎝가 넘었으면 좋겠다’며 찾아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 “장기 부작용 알 수 없어” 경고
유트로핀(LG화학), 그로트로핀투(동아에스티) 등 인기를 끄는 성장호르몬 주사제는 성조숙증, 저신장증 등 질병을 겪는 경우에만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의료계에선 치료 시 통상 2년 이상 지속적인 투여를 권하는데, 비급여 주사의 회당 비용은 20만원이고, 통상 주 2회를 맞는다.

월 100만원이 넘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성장호르몬 주사제 시장은 초호황이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장 규모는 4445억원으로 2019년 1452억원보다 세 배 규모로 커졌다. 저출생 여파로 소아청소년과 환자가 감소하자 성장호르몬 치료를 주력으로 삼은 병원도 늘고 있다.

의료계에선 정작 성장호르몬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강은구 고려대안산병원 소아청소년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성장호르몬제 연구는 치료가 필요한 환아를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 아닌 아이들에게 장기간 호르몬이 투여됐을 때의 부작용 연구는 미미하다”고 우려했다.

특히 최근 부작용이 급증한 배경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의원은 “성장호르몬 주사의 부작용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데, 최근 중대 부작용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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