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현대 산문의 혁신가"…따뜻한 문체로 소수자 보듬다

입력 2024-10-10 23:24   수정 2024-10-15 16:51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4)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꿨다’며 채식을 시작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남편과 언니에게 ‘비정상인’ 취급을 받는다. 결국 영혜는 이혼 소송을 당하고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 입원 수속을 밟는다.

한강의 소설은 난해하다. 비주류 인물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듯한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여운이 길다. 인간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소외당한 자들을 보듬으려는 희망을 전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의 수상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1970년생인 한강은 광주광역시에서 자랐다. 자서전 성격의 소설 <몽고반점>에서 한강은 자신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몸이 안 좋아 다량의 약을 먹었던 것으로 묘사했다. 열 살 때 가족이 서울 수유리로 이사한 이후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다.

서울 안국동에 있던 풍문여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그의 집은 문인들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소설가 한승원(84).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으로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같은 문학상을 거머쥔 원로 작가다. 오빠(한동림)와 남동생(한강인)도 소설을 썼다.

한강은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 ‘샘터’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소설가는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으며 시작했다.

한강은 지침 없이 글을 썼고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상을 받았다. 1995년 첫 단편소설집 <여수>를 펴낸 이후 단편소설집을 두 권 더 냈다. <아기 부처>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 등으로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삼성호암상을 받았다.

한강의 작품은 비서구권, 여성, 소수자 등 비주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1980년대 암흑 같은 터널길을 걸어온 고향 광주가 그중 하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문장을 풀어낸 <소년이 온다>(2014)로 2017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상인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장편 <채식주의자>(2007)부터다.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받으면서다. 부커상의 전신인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이 작품을 두고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에 관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한강에게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메디치상을 안겨줬다. 한강이 1990년대 후반 제주 바닷가에 월세방을 얻어 지내는 동안 취재한 주민의 회고록에 기반해 썼다.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상흔을 다룬다는 점에서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룬다.

이처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소수자성’이 주요 화두가 된 최근 문화예술계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4월 세계 최고 국제미술전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이 뉴질랜드의 원주민 작가 그룹 ‘마타아호 컬렉티브’에 돌아간 것이 단적인 예다. 한강은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 소설집, 시집을 오가며 작품을 펴냈다. 장편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안시욱/박종서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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