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한강이었다. 2016년 한강 소설가가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후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문학을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외국 책의 국내 출간과 한국 책의 해외 출간을 돕는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한강의 부커상 수상 이후 외국에서 한국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지금은 한국 소설과 에세이 등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K콘텐츠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한국 작가가 이름을 올리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2018년 한강의 <흰>, 2019년 황석영의 <해 질 무렵>,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올랐다. 2023년엔 천명관의 <고래>, 올해는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아깝게 수상을 놓쳤다.
이 밖에 2022년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 영국추리작가협회(CWA)에서 주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2020년 손원평의 <아몬드>가 일본 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학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상업적 성공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해외에서 팔린 한국 문학 작품은 185만 부에 달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K팝을 넘어 K힐링 서적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출간을 앞둔 <공방의 계절> 같은 소설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영화와 드라마, 클래식, 대중음악, 미술, 음식 등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AP통신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반영한다”며 앞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받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성공을 거뒀으며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K팝 그룹도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고 짚었다.
‘기생충’은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고 권위의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BTS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신음하던 2020년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영어곡 ‘다이너마이트’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1위에 올랐다. 이어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 등을 잇달아 빌보드 1위에 올려놓으며 이 시대 최고의 팝 그룹 가운데 하나로 올라섰다. 클래식에선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022년 밴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데 이어 최근 ‘클래식 음반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그라모폰상을 받으며 K클래식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식(食)문화로도 이어졌다. 김밥, 한국식 핫도그, 떡볶이 등 ‘K푸드’가 인기를 끌었고 올해 1~9월 농식품 수출액은 10조원에 육박했다.
한국 문화가 다방면에서 골고루 인기를 끌며 K콘텐츠가 르네상스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연구교수는 “K팝이나 K드라마처럼 대중문화 한두 분야만 성공한다고 한국 문화의 부흥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K컬처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문화가 단순히 K팝과 K푸드를 넘어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문학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이라며 “언젠가 올 순서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뜻밖의 기쁜 소식이 들린 것”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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